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The Closet, 2020
감독 - 김광빈
출연 - 하정우, 김남길, 허율, 김시아
교통사고로 눈앞에서 부인을 잃은 ‘상원’은 딸 ‘이나’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다. 그는 사고 이후 거리가 멀어진 딸과 관계 회복을 꾀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던 중, 이나가 혼자 있는 방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웃는 일이 번번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상원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이나는 새 친구가 생겼다고만 답한다. 둘의 관계는 계속 악화하고, 급기야 상원이 일 때문에 집을 몇 달 비우게 되자 극에 달한다. 보모를 구해놨지만, 그녀는 상당히 불성실한 사람이었다. 그 와중에 이나가 실종되고, 상원은 아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아이의 실종에 책임이 있는 용의자 취급을 받고 만다. 실의에 빠진 그의 앞에 ‘경훈’이 나타나, 이나를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좀 고민을 했다. 감독의 전작을 보니 거의 다 단편이었고, 장편은 이 작품이 처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연을 맡은 두 성인 배우들이 데뷔한 지 햇수도 오래되었고 연기를 잘한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이어서 조금 기대를 했었다. 그 때문에 극본이나 편집이 좀 엉망이어도 두 배우가 잘 이끌어줄 거로 생각했었다.
잊고 있었다. 배우들이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극본과 편집이 엉망이면 모두가 소용없다는 것을……. 심지어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과연 소문인지 진실인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딸에게 말을 건네는 상원 역을 맡은 하정우의 말투는 마치 ‘이나야, 여기 망치나 몽둥이 있니?’라고 저절로 변환되어 들리는 것 같았고, 경훈 역학을 한 김남길의 톤이나 행동 역시 그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본 분위기 그대로였다. 경훈이야 퇴마사니 사제 연기와 겹칠 수 있다고 해도, 상원은 좀 심각했다. 어쩌면 내가 영화 ‘추격자 The Chaser, 2008’에서의 그의 연기를 너무 인상 깊게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10년도 더 지난 영화의 연기가 기억에 남다니, 아마 배우의 연기와 배역이 딱 맞아떨어졌었나 보다. 그러면 이번 작품의 배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까? 출연하는 모든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번은 좀 심했다.
그리고 신파……. 신파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적절한 신파는 감동을 주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니까. 공포영화에 신파를 넣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가끔 사랑과 우정 같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넣는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포호러스릴러 장르에서 너무 신파 위주로 흘러가는 내용이면 곤란하다. 이 영화에서는 왜 옷장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가에 관해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지루해진다. 아이들을 잡아가는 원인이 되는 원혼에 관한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이 원혼이 되어가는 과정은 마음이 아팠고,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사건의 해결 방법이 그거뿐이었다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왜 애꿎은 사람은 죽이면서 사건의 원흉인 사람에게는 앙갚음도 못 하는 건지 의문이다. 제 3자는 거리낌 없이 죽이면서, 원흉은 부모라서 손도 못 대는 건가? 부모에게 학대받다 살해당했는데도, 유교 정신은 살아있었나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인을 잃고 상원이 온갖 약을 먹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모든 것이 그가 약의 부작용이나 오남용 때문에 보는 환각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나는 실제로 그의 방임 때문에 죽은 뒤고 말이다. 너무 비극적일까?
영화는 아동 학대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언어적 정서적 물리적 폭력만 학대가 아니라, 방임도 학대라고 보여주고 있었다. 이나가 집을 떠나고 싶었던 건, 자신을 봐주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어른들 사이에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