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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黑面の狐, 2016
작가 – 미쓰다 신조
2차 대전이 끝난 후, ‘모토로이 하야타’는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 전쟁 때는 일본과 만주 그리고 한국까지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국가를 꿈꿨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었다. 마침내 그는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며, 일본의 재건에 보탬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우연히 만난 ‘아이자토 미노루’의 소개로, 그는 한 탄광에서 일하게 된다. 갱도가 무너지지 않을까하는 불안함과 힘든 일에 따른 피로가 누적되던 어느 날. 갱도가 무너지고 광부 한 사람이 갇히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리고 광부들이 하나둘씩 목을 매 죽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산마처럼 비웃는 것 山魔の如き嗤うもの, 2008’에서 처음 알게 되어, 한동안 열심히 읽었던 작가 미쓰다 신조의 신작이다. 이 작가의 책은 읽으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고, 다 읽고 주변을 둘러보고, 자기 전에는 엄마랑 잘까 말까 고민하게 하고, 혼자 자려고 누웠을 때는 저절로 이불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기이하고 어쩐지 오싹함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작가의 다른 시리즈, 그러니까 도조 겐야 시리즈나 집 시리즈는 일본 전통적인 관습이나 풍습, 미신 등이 잘 녹아 있었다. 특히 도조 겐야 시리즈는 일본의 무속 신앙을 아주 무시무시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일본하면 호러가 자동적으로 연상될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이번 신작은 또 어떨지 궁금했다. 이번에도 엄마랑 자야할 정도일까?
가능하면 스포일러를 쓰지 않고 감상을 적으려고 하지만 그게 꼭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도 그런 경우였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말해야 하는데, 그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100%는 아니지만, 50%는 될 것 같다. 따라서 원하지 않으면 여기서 읽는 것을 멈추는 게 좋다.
***스포 방지선*****
***미리 경고했음*****
이 책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강제 징용에 끌려간 조선인들이 당한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담겨있다.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강제로 탄광에 끌려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가며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하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컴컴한 갱도 속에서 죽어간 이들의 한이 드러나 있다. 또한 그들을 가혹하게 대한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일본의 앞잡이가 된 이들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살로 꾸며져 죽은 이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돼야 전쟁이 끝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 속에서는 전쟁은 진행 중이었다.
화해를 암시하면서 끝나는 결말을 보자니, 뭔가 기분이 그냥 그랬다. 하야타가 진범을 놓아주면서 둘이 화해하는 장면은, 뭐랄까……. 가해자가 자기가 저지른 과오를 털어놓은 다음 피해자의 범죄를 눈감아주고, 둘이 악수를 하면서 화해했다고 하면……. 그게 훈훈한 결말이 되는 걸까?
물론 일본 정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2차 대전 당시 식민지국들에게 한 만행을 일본 작가가 적나라하게 글로 표현하면서, 그 일들이 잘못이었다는 뉘앙스로 서술한 건 놀라운 일이다. 일본에도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아마 그 명단에 오르지 않았을까하는 우려도 살짝 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결말이 과연 진정한 화해를 보여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가 너희 사람들 데려다가 가혹한 짓 많이 했어, 그건 미안해. 그런데 너도 우리 사람들 죽였잖아. 그러니까 살인은 눈감아줄 게. 지난 일들은 여기서 묻자.’ 이런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가해자라는 걸 인식하고 있는 사람을 하나 알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진실을 알아가는 거겠지.
이번 작품은 다행스럽게도 전과 달리 뒤를 돌아보지도, 엄마와 잘까말까 고민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