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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모 ㅣ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4
듀나 지음 / 알마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 듀나
듀나의 단편집이다. 전에 리뷰를 적은 ‘구부전’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지구와 다른 별, 과거와 미래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쩐지 현대를 교묘하게 풍자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리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인간 숙주에 정신을 이동시켜 지구를 여행하는 외계인들이 많아진 미래. 주인공은 그런 외계인 여행객을 안내하는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여행객이 여행사를 방문하는데, 사실 그들은 지구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구에서 노리는 것은 과연 무얼까?
처음에는 왜 제목이 대리전일까 싶었는데, 끝까지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럭비 경기, 아니 우주 전쟁! 소박한 거 같은데 은근히 스케일이 컸다. 한국은 미래에서도 다른 나라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장소가 될 운명이었단 말인가!
『사춘기여, 안녕』은 뇌시술을 통해 감정 조절이 가능해진 시대가 배경이다. 사춘기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완벽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어른들의 바람대로 집중력 있고 차분하며 감정의 변화 따위는 느끼지 않는 아이가 된다. 주인공은 아빠의 반대로 유일하게 시술을 받지 않았다. 이에 소년은 아빠의 판단에 따르지 않기로 하는데…….
분노 조절이 가능함에 따라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좋아지며, 자신의 숨겨진 재능까지 파악하여 진로를 정할 수 있다니! 이건 완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시술이 가능하다면,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난 어떤 선택을 내릴까? 그런데 나노봇을 뇌에 이식한다면, 그건 내 의지일까 나노봇의 의지일까?
『미래관리부』는 어느 순간, 미래에서 온 후손들이라는 자들이 청각장애인을 통해 현재에 연락해온다. 그들은 역사를 완성하겠다며 현재의 일에 사사건건 개입을 한다. 이후, 사람들은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상실한다. 어차피 후손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다 잘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자들이 등장하는데…….
과연 그들이 미래에서 온 후손들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현재의 우리가 움직인다면, 그건 현재를 사는 걸까 미래를 사는 걸까? 내가 뭔가를 이루어간다는 성취감이 사라진 사람들이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건 뭐랄까, 미래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위한 에너지를 만드는, 마치 배터리가 된 기분이 아닐까?
『수련의 아이들』은 LK 생물공학연구소에서 청소를 하는 수련의 이야기다. 우연히 연구소에서 만든 액체를 뒤집어쓰게 된 수련. 이후 그녀의 신체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LK라는 이름이 낯익다. 그렇다.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서 어떻게 보면 악의 축으로 등장했던 기업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온갖 이상하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다.
『평형추』에서도 LK 그룹이 등장한다. 대외업무부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우연히 ‘최강우’라는 신입사원을 눈여겨보게 된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는 죽은 회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를 조사하던 주인공은, 놀랄만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이 시대에는 ‘웜’이라는 것을 뇌에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웜을 이식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활용도는 다양하다. 문제는 최강우가 이식받은 웜에 있었다. 그걸 다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패스. 하여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부처님 손바닥 위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해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간대로 오갈 수 있는 때가 배경이다. ‘시간인’이라 불리는 그들은 다양한 시간대를 다니며, 침략하기도 하고 문물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을 창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시간선이 꼬이면서 다양한 분기점을 만들어내는데…….
뭔가 복잡하다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꼬이는 것이, 역시 시간 여행은 어렵다는 느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나 미래의 나를 만나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 모든 시간대에 있는 내가 다 진짜일까?
『두 번째 유모』의 배경은 해왕성이다. ‘아버지’라 불리는 인공지능들의 전쟁이 있은 후, ‘어머니’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슷한 신인류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며 어머니와 소통하던 ‘가을 이모’가 사망한 이후, ‘서린’이라는 여인이 화성에서 도착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의 침략에 맞설 준비를 하는데…….
보호하고 건설하는 어머니와 파괴하고 살육을 즐기는 아버지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믿음에 휩쓸리지 않고 양서류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외모를 가진 아이들. 인간의 미래란 어떤 걸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과연 지금의 이 겉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인간을 인간이라 결정짓는 건 어떤 요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