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In the Tall Grass, 2019
감독 - 빈센조 나탈리
출연 - 레이슬라 데 올리베이라, 에이버리 휘테드, 패트릭 윌슨, 윌 부이 주니어
임신 중인 ‘베키’는 오빠 ‘칼’과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한적한 길가에서 쉬던 중, 풀숲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토빈’이라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둘은 풀숲으로 들어가 아이를 찾는데, 이상하다. 머리 위를 훌쩍 넘는 높이의 커다란 풀이라서 그런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길을 헤매게 된다. 결국, 베키와 칼은 길이 엇갈리고 만다. 한편 연락이 되지 않는 베키를 찾아온 남자친구 ‘트래비스’ 역시 풀숲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큐브 Cube,1997’을 만든 감독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물론 킹의 아들인 ‘조 힐’ 역시 공동 작가로 적혀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조 힐의 팬에게는 죄송하지만, 난 킹이 좋은 거니까.
처음 예고편을 보는 순간 든 생각은, ‘옥수수밭은 이미 써먹었으니까 풀숲 버전으로 바꾼 건가?’였다. ‘옥수수밭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Corn’이라고, 1978년에 발표된 스티븐 킹의 작품이 있다. 넓은 옥수수밭이 있는 마을이 배경인데, 정체불명의 신을 믿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던 여행객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도 초반까지는 그 작품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트리피드의 날 The Day of the Triffids, 1950’이 연상되기도 했다. 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것같은 풀들이 나와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서서히 시공간 왜곡물로 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아, 스포일러는 좋지 않다.
스티븐 킹의 여러 작품에서 몇 가지 설정을 가져오고, SF 요소를 살짝 가미한 다음에, 감독의 전작을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을 잘 버무린 영화였다. 다른 작품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처음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흘러가려나?’ 아니면 ‘저렇게 될까?’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헐?’하더니 눈을 떼지 못했다. 왜 그런지는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말하지 않겠다.
영화 ‘컨저링 The Conjuring, 2013’과 ‘에너벨 Annabelle, 2014’ 시리즈에서 퇴마사인 ‘워렌’ 역할을 맡았던 ‘패트릭 윌슨’이 이번에는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퇴마를 너무 많이 하다가 악령에 홀린 모양이다.
그나저나 트래비스가 도착했을 때, 수많은 차가 길가에 녹이 슬고 먼지가 쌓인 채로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누군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미국은 넓으니까, 연락이 끊기면 잠적했다거나 아니면 이사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찰대가 한 번이라도 와봤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 순찰대가 풀숲에 들어갔을 수도 있고, 그들이 연락이 끊어진다면 다른 순찰대가 찾아오고, 그러다가 상부에까지 알려지고…….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가? 호러 영화 속의 미국은 치안이 참…….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건 영화 속에서는 기본 설정인 모양이다.
옥수수밭이건 풀숲이건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