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전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5
듀나 지음 / 알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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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듀나

 

 

 

  SF와 뱀파이어그리고 조선 시대라는 조합에 이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다물론 일곱 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이기에 다른 이야기들은 각각의 조합이 달랐다하지만 그 다른 조합들도 상당히 흥미로웠다기본 배경은 현재가 아닌 미래라는 공통점은 있지만각자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구부전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인 에피소드이다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선비 집안의 열아홉 먹은 막내며느리가 화자이다병에 걸렸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기이한 일이 벌어진다시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하지만되돌아온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밤에만 활동하고 사람의 피를 빠는뱀파이어가 된 것이다가족은 물론 식솔들까지 하나둘씩 뱀파이어가 되지만막내며느리와 둘째 아들의 쌍둥이만이 살아남았다쌍둥이를 인질로 잡힌 막내며느리는먹이를 구해오라는 시아버지의 명령으로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씩 꾀어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차분한 어조로 사건의 개요를 얘기하는 막내며느리의 태도에서어떻게 보면 냉소적이면서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는 자세까지 느껴졌다. 99칸 대저택의 부자이자 명망 있는 유학자 가문에서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던 그녀였다그랬기에 시댁의 몰락 아닌 몰락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일까마지막 그녀의 결정과 행동에 박수를 보냈고상당히 통쾌했다.

 

 

  『추억충은 외계 바이러스가 지구에 퍼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추억충이라는 이름의 이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의 감정을 옮기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다행히 치료약이 개발되었지만그동안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끼는 일을 겪어야 한다. ‘윤정은 어느 날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처방을 받는다하지만 이미 그녀의 감정과 관심은 같은 모임에 있는 사람에게 쏠리는데…….

 

  내 감정과 기억이 내 것이 아니라타인의 것이 섞인 것이라면그건 어쩌면 상당히 기분 나빠지는 경험일 것이다게다가 또 다른 누군가는 내 감정과 기억을 느낄 수 있다는 건상상만으로 끔찍한 일이다이번 이야기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로 나왔지만분노나 살기 같은 게 공유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무섭다.

 

 

  『왕의 넋은 대체 역사물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교황청은 신성 과학이라는 학문을 발전시켜종교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한편 혁명이 일어난 조선에서는 왕을 죽이고새로운 정부 조직이 들어서는데…….

 

  이 이야기는 첫 문장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문을 여니 교황청에서 보낸 정원사 두 명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물론 이 정원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잔디와 화초를 가꿔주는 그런 정원사는 아니었다교황청의 정원사 이야기가 시리즈로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매력적인 소재였다.

 

 

  『가말록의 탈출은 인간들의 유희 대상이 된 한 외계 종족의 이야기다둥근 물체를 보면 본능적으로 쫓는 이들의 습성을 이용해인간들은 가녹이라는 게임을 만들어낸다외계 행성에서 먼저 인기를 끌다가 지구에서 첫선을 보이는 날예상치도 않은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데…….

 

  다 읽고 나니어쩐지 마음이 아파지는 이야기였다어떤 존재의 본능을 이용해 자기들의 유희 거리로 삼은 인간이 참 무서웠고본능대로 움직이다가 결국 가질 수 없는 욕망을 품게 된 그 존재는 안타깝기만 했다.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는 핵전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등장한다그들은 과학을 멀리한 채종교가 아닌 종교를 믿으면서 현재에 충실하여 살고 있었다그런데 여기에 대기업 소속의 두 직원이 찾아오면서 문제가 생긴다두 사람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온갖 것들그러니까 그들이 멀리했던 과학과 문명에 대해 전파하기 시작했다이에 반발하는 한 촌장이 등장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즘 중국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기업들의 모습이 떠올랐다차이나머니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의 신념이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과잉대응을 하거나 부당함을 외면하는 그들의 행태가 연상되었다그러니까 다른 이들의 문화나 전통이 망가지건 말건팔아먹기만 된다는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겨자씨는 인간과 로봇이 사라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내용이다얼핏 보면 친환경적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하지만 그들의 계획에는 누구도 깨닫지 못한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멋진 프로젝트구나좋은 사람들이야!’라며 훈훈함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그러나 결말을 보는 순간, ‘안 돼!’를 외치고 말았다왜 그런지는 스포일러가 되니까 패스하겠다하여간 난 그들의 그런 결정에 반대표를 던지겠다제발 그러지 말라고!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는 마법과 기사가 있는 판타지와 과학 그리고 꿈이 마구 뒤섞인 묘한 분위기의 이야기다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잠자는 여왕을 깨우기 위한 군대가 파견되었다하지만 그들은 몰랐다거기에는 마법사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는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불행이고누가 호접지몽 胡蝶之夢에 빠져있는지 모르는그런 이야기였다그런데 설정은 매력적인데어쩐지 나에게는 다른 이야기들에 비교해서 그냥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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