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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ㅣ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アリス殺し ,2013
작가 – 코바야시 야스미
어느 날부터인지 ‘아리’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에 관한 꿈을 계속해서 꾼다. 그러던 중 달걀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일어나고, ‘흰토끼’가 ‘앨리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한편, 현실에서 아리가 다니는 대학교의 연구원이 옥상에서 추락사하는 일이 발생한다. 아리는 같은 학교 학생인 ‘이모리’와 사건에 관해 얘기하던 중, 그도 역시 이상한 나라와 관련된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을 조사하던 둘은, 죽은 연구원이 그 세계에서의 험프티 덤프티였다는 것도 밝혀낸다. 꿈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이어져 있으며, 어느 한쪽에서 죽으면 다른 쪽에서도 사망하는 관계였다.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 나가고, 그때마다 앨리스는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의혹의 시선을 받는다. 여왕이 판결을 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그 안에 앨리스는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꿈과 현실이 이어져 있는 설정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아마 장자의 ‘호접지몽 胡蝶之夢’ 이야기와 영화 ‘나이트메어 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일 것이다. 특히 나이트메어는 꿈속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설정이니, 이 소설의 구성과 제일 비슷할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는 갈고리 손을 단 변태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그곳이 꿈의 세계이고 지구가 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읽다 보면 ‘어?’하면서 어느 순간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떡밥을 던진다. 이후 계속 집중하다 보면 ‘이건 뭐지?’라는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가능한 걸까?’라는 의심이 마구마구 생긴다. 단순히 나이트메어와 비슷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가, 위에서 언급한 장자의 나비 이야기가 생각나더니, 급기야는 아차! 스포일러를 할 뻔했다.
두 세계를 기억하지만 서로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 다른 한쪽은 꿈이라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두 세계의 관계를 확실히 파악하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의심하고 속고 속이며 희생자를 늘려간다. 그 와중에 앨리스는 한정된 기간 안에 범인을 찾아 살아남아야 하고 말이다. 한쪽도 아니고 두 세계를 오가며 벌어지는 일이기에 더 다급하고 급박했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을 고르자면 대화일 것이다. 현실 지구의 대화는 그나마 맥락이 있는데, 다른 세계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각 인물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인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공감되는 부분도 생기더니, 그들의 의식에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그 세계에 떨어져도 대화에 잘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 하지만 살해당하거나 용의자가 되는 건 사양하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어릴 때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버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만 접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왜 완역본이나 성인용으로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시간이 되면,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등장인물들을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