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1995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이번 시즌은 총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넷 다 장편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이하게 두 편은 1995년에, 나머지 두 편은 1996년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Hercule Poirot's Christmas』는 소설 ‘크리스마스 살인 Hercule Poirot's Christmas, 1938’이 원작이다. 포와로가 의뢰를 받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한 부호의 저택에 가게 된다. 원래는 안 가려고 했지만, 집의 난방이 고장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젊은 시절 여러 여자와 바람도 피우고,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엄청난 돈을 번 ‘시미온 리’.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집을 나갔던 자식들도 불러모으고, 또한 신변의 위협을 느껴 포와로도 부른다. 그런데 그가 밀실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돈이 많아도, 인성이 별로면 말년이 괴롭다는 걸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였다. 특히 복잡하고 깔끔하지 않은 여자관계와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 때문에 자기 집에서 죽을 위협을 느낄 정도니……. 살인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피해자는 더 일찍 죽지 않은 게 이상한 남자였다.
그나저나 지난 시즌부터 이상하다 느꼈지만, 여기서 확실히 알아차린 점이 있다. 도대체 ‘젭 경감’의 관할은 어디까지인 걸까? 포와로가 사건을 맡은 곳마다 거의 그가 등장한다. 런던은 물론이고, 다른 지방까지!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그 동네 경찰이 있긴 하지만, 포와로가 젭 경감과 함께 나타나도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았다. 설마 그의 담당은 포와로였던 걸까? 그가 사건을 맡으면 무조건 젭 경감이 담당하는 그런 거? 아니면 젭 경감은 그 뭐더라, 영국의 FBI 같은 전국 담당인 걸까?
『Hickory Dickory Dock』는 ‘히코리 디코리 살인 Hickory, Dickory, Dock, 1955’을 영상화했다. ‘히코리 디코리 독’은 사건이 일어나는 거리의 이름이기도 하고, 동요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는 그 동요가 무척이나 음산하게 울려 퍼져서, 어쩐지 호러물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미스 레몬’의 언니가 일하는 하숙집에서 이상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언니의 고민을 들은 미스 레몬은, 포와로에게 조언을 요청한다. 하숙집으로 간 포와로는 사건의 심각함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하라 말한다. 하지만 주인은 코웃음을 치고, 하숙생 한 명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지난 시즌에 포와로가 젭 경감에게 영국에는 요리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그게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부인이 집을 비운 동안, 젭 경감은 포와로네 집에서 머무르기로 한다. 그래서 포와로는 젭 경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는데, 그게 젭 경감에게는 영 익숙하지 않았다. 후반에 그가 자기 집에 포와로를 초대해 본격 영국 요리라는 것을 선보인다. 물론 으깬 감자나 미트볼 같은 것이 포와로의 미적 기준에 도달할 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 에피소드에서 미스 레몬이 입고 나온 코트가 무척 예뻤다.
『Murder on the Links』의 바탕이 된 작품은 ‘골프장 살인사건 Murder on the Links, 1923’이다. 골프 대회에 참석하기로 한 헤이스팅즈와 함께 프랑스로 온 포와로. 우연히 호텔에서 만난 사람의 의뢰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의뢰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였다.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 경찰은 포와로를 훼방꾼이라 여기며, 사건에 접근하지 말라 경고한다. 하지만 포와로는 의뢰인의 사망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건 수사를 강행한다.
프랑스의 경감과 포와로의 자존심 대결이라고 하면 좋겠지만, 다들 알고 있다. 포와로가 실패할 리 없다는 사실을. 게다가 그 경감의 외모나 콧수염은 어쩐지 포와로의 짝퉁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헤이스팅즈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한눈에 반한 그는 여인이 물어보는 대로 사건에 대해 알려주는 일을 저지른다. 아무리 여자에게 반했다지만, 사건에 대해 그렇게 떠벌리다니! 아, 그러고 보니 그가 이런 일을 한 게 한 번이 아니다. 그걸 이해하고 웃어넘긴 포와로가 역시 대인배!
『Dumb Witness』의 원작은 ‘벙어리 목격자 Dumb Witness, 1937’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말 못 하는 사람이 나오는 건 아니다. 아마 강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그렇게 지은 것 같다. 헤이스팅즈 친구의 요트 경기를 보기 위해 함께 온 포와로. 그런데 그 집안의 노부인이 사고를 당한다. 자신의 재산을 둘러싼 가족과 지인들의 갈등을 눈치챈 노부인은 유언장을 고치기로 하는데….
자신의 돈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자신의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이 용의자라면? 노부인은 어떤 심정으로 유언장을 고치려고 했을까?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고 난 뒤에, 그 사람이 나오는 부분을 다시 돌려보니 으아. 글로 볼 때보다 더 소름 끼쳤다. 어쩐지 범인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드는 에피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