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1993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포와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묶음이다. 4시즌에 비하면 편수가 많은데, 그건 다 단편을 영상화했기 때문이다. 이 시즌 이후로는 단편이 영상화된 것은 없다. 언젠가도 다른 리뷰에서 적었지만, 단편을 영상화한 경우에는 원작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단편으로 한 시간 정도의 드라마를 만들기엔 너무 분량이 적어서, 없던 설정을 집어넣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즌에도, 여러 가지 설정들이 추가되었다. ‘헤이스팅즈’의 다양한 인맥이라든지, 산업 스파이 관련 문제, ‘미스 레몬’의 남자친구와 얽힌 사건, ‘포와로’가 벨기에 경찰 때 마음에 둔 것 같은 여인의 등장 등등.
『The Adventure of the Egyptian Tomb』는 단편집인 ‘포와로 수사집 Poirot Investigates, 1924’에 수록된 ‘이집트 무덤의 모험’이 원작이다.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 발굴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아들을 지켜달라는 귀부인의 요청으로, 포와로는 이집트로 향하는데……. 크리스티가 이집트에 매료되었는지, 포와로를 출장 보낸 이야기들이 여럿 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미스 레몬이 타롯 점을 치기도 하고, 헤이스팅즈와 위자보드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파라오의 저주 사건과 맞물려 꽤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포와로의 그 한심하다는 표정이란……. 단어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The Underdog』는 단편집 ‘패배한 개 The Under Dog, 1929’에 실린 ‘패배한 개’를 영상화했다. 소설에서 포와로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거기에 산업 스파이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이번에도 미스 레몬은 최면술을 배우는데, 포와로가 사건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미스 레몬,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히 특이하다.
『The Yellow Iris』은 단편집 ‘리가타 미스터리 The Regatta Mystery and Other Stories, 1939’에 있는 ‘노란 붓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원작에 없는 아르헨티나의 군부 쿠데타 상황과 맞물려 경제적 정치적으로 얽힌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그게 아르헨티나의 쿠데타가 벌어졌던 시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군부 쿠데타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포와로, 여기서 영국에는 요리cuisine가 없고 음식food만 있다고 투덜댄다.
『The Case of the Missing Will』는 단편집인 ‘포와로 수사집 Poirot Investigates, 1924’에 수록된 ‘사라진 유언장’을 드라마화했다. 원작 내용이 이랬던가 하는 의문이 드는 에피소드였다. 출생의 비밀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 다루었다. 그런데 혈연관계도 아닌 누군가 나에게 유산을 물려준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해야지,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좀 놀랐다. 과연 그 사람들은 진짜 마음을 통한 사이였던 걸까 아니면 물려받을 돈 때문에 비위를 맞춰준 걸까?
『The Adventure of the Italian Nobleman』는 단편집인 ‘포와로 수사집 Poirot Investigates, 1924’에 있는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원래는 없던 미스 레몬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마지막 그녀의 반전은 진짜 놀라웠다. 포와로의 비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The Chocolate Box』는 단편집인 ‘포와로 수사집 Poirot Investigates, 1924’에 실린 ‘초콜릿 상자’를 영상화했다. 포와로가 유일하게 실패한 사건으로 소설에서 나오는데, 여기서는 약간 바꿨다. 유일하게 실패한 것이 아니라, 범인의 심정과 상황을 받아들여 자신이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 벨기에라는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
『Dead Man's Mirror』는 단편집 ‘죽은 자의 거울 Murder in the Mews and Three Other Poirot Cases, 1937’에 있는 ‘죽은 자의 거울’이 원작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영매가 등장한다. 흐음, 파라오의 저주에 최면에 급기야 영매까지! 아무래도 제작진이 노린 것 같다.
『Jewel Robbery at the Grand Metropolitan』는 단편집인 ‘포와로 수사집 Poirot Investigates, 1924’에 수록된 ‘그랜드 메트로폴리턴 호텔의 보석 도난사건’이 바탕이다. 심한 독감에 걸린 포와로가 휴양차 간 곳에서 맞닥뜨린 사건을 다루고 있다. 휴양하러 보냈는데 사건을 맡았다며, 그걸 말리지 않은 헤이스팅즈를 미스 레몬이 노려보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미스 레몬이 헤이스팅즈보다 더 센 건가?
하여간 이번 시즌에서 헤이스팅즈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 있고, 투자에 실패했지만 먹고살 만한 돈이 있고, 외국으로 이민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외국 여행도 가끔 가고……. 도대체 이 사람 직업이 뭔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