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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 – 서한영교
이 책은, 저자가 학창 시절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 연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쓴 기록이다. 사실 초반을 제외하면, 한 아빠의 육아 일기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그게 페미니스트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그건 저자가 문학 소년, 그중에서 특히 시를 좋아하고 썼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학창 시절 그가 알게 된 문단 내 성폭력과 관련된 사건,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거칠고 폭력적인 언어를 입에 달고 사는 주변 지인들, 여성에 관해 원색적이고 외설적인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 등을 통해, 그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그의 사회에 관한 생각은 한층 더 깊어졌다. 여자친구가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앓고 있었기에, 그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은근하면서 노골적인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 그는 임신한 아내를 돌보기 위해 육아 휴직을 한다. 하지만 그건 거의 퇴사였다고 할 수 있다. 시력을 잃어가는 아내와 함께 공동 육아를 하면서, 그는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유모차를 끌고 길을 나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고, 맘충이라는 비난을 듣고, 또 프리랜서로 면접을 보러 가면 남자가 육아를 한다고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한다. 그는 가정주부라는 위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심각한 내용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부분은 언어유희로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특히 아기에 관한 부분은 말랑말랑하면서 훈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피곤함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각오가 잘 드러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점은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 꽤 있었다. 부부 사이에 집안일을 어떻게 나누는가라든지 매주 하는 가족회의에 대한 것은 나중에 나도 결혼하면 적용해보면 좋을 거 같았다. 물론 그 전에 결혼할 사람과 충분히 대화를 나눠야 하겠지만 말이다.
‘역지사지 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 성어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역지사지라는 말이 이토록 절실하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경험해보고 동시에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분명히 어린 아이들을 그런 소양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기본 목적인 것 같은데, 요즘의 교육기관은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을 강제로 주입하는 이분법적인 교육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