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Realms , 2017
감독 - 다릭 게이츠
출연 - 라이언 켈리, 매디슨 맥킨리, 골프 피차야 니티파이살쿨, 프리야 수안도케마이
‘바비’와 ‘주얼’은 은행을 턴다. 경찰에 반격하기 위해 둘은 ‘위니’와 ‘이언’ 그리고 ‘챠오우’를 인질로 삼는다. 도주하던 중 교통사고가 나고, 다섯은 근처에 있는 버려진 저택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저택에서 그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는데…….
두 강도역을 맡은 사람은 서양인이고, 나머지 등장인물은 동양인인 작품이다. 영어 원제목과 한글 제목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영화 초반 은행강도 장면과 자동차 추격장면은 그럭저럭 볼만했다. 어째서 은행강도 두 사람이 처음에는 가면을 뒤집어썼다가 나중에는 이름을 부르고 서로 얼굴을 보여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 그러니까 장소가 미국이 아니니까 그냥 공항에서 튀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외국인이라 등록이 되지 않아서 안 잡힐 거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동양인의 눈에 서양인은 다 비슷비슷하게 보일 테니까 말이다. 하여간 상당히 어설프게 그들은 은행을 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어느 버려진 집으로 들어가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상당히 늘어진다. 인질과 강도 그리고 저택의 미묘한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인질들의 모습은 분명히 아슬아슬하고 보는 내내 조마조마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아마 계획을 세운다거나 들키지 않게 몰래 하는 모습이 아닌, 우리 탈출할 거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 같은 장면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특히 위니의 삽질은 그야말로 보는 내내 속 터졌고, 그 와중에 자기 외모의 멋짐을 강조하는 챠오우의 모습은 그냥 한숨만 나왔다. 게다가 인질들이 있는 곳에서 큰소리가 나건 말건, 물고 핥고 빨기에 여념 없는 바비와 주얼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이 작품, 은근히 구성을 꼬아뒀다. 이런 장르의 작품을 몇 번 보면, 이 저택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챌 수 있다. 외국 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에도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이 꽤 있다. 음, 이건 영화 제목을 말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그건 패스.
그걸 의식했는지, 감독은 결말 부분에 한 가지 더 반전을 주었다. 물론 그건 밝힐 수가 없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음, 힌트를 주자면 제작진이 동양 철학, 그중에서도 불교나 인도의 순환적 시간관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정도? 그런데 문제는 그 부분에서 발생했다. 아마 제대로 잘 연출되었다면, 그 설정이 주는 놀라움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 그 이상은 들지 않았다. 사실 처음 봤을 때는 ‘저게 뭐지?’라고 의아했다. 그러다 두 번 보면서 ‘아하!’하고 이해가 갔다.
설명충이나 스피드웨건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건 영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니까. 하지만 이 작품은, 음……. 전반적으로 너무 지루해서, 반전이라고 집어넣은 부분까지 가기가 힘들었다. 그 전에 집중력이 흩트려져서 극에서 주는 힌트를 놓치고 말았다. 진짜 맘잡고 두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으면, ‘왜 갑자기 이런 전개가?’라는 의문만 남는다. 한 시간 삼십 분짜리인데, 체감상으로는 거의 세 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픈 영화였다. 몇 번 집중력을 잃기는 했지만, 어쨌건 끝까지 그것도 리뷰를 쓰겠다고 두 번이나 본 내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