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둘리틀 박사의 달 여행 ㅣ 둘리틀 박사의 모험 8
휴 로프팅 지음, 임현정 옮김 / 궁리 / 2018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Doctor Doolittle in the Moon, 1928
작가 - 휴 로프팅
지난 이야기에서 거대 나방을 타고, ‘둘리틀’ 박사는 달나라로 떠났다. 동행한 것은 앵무새 ‘폴리네시아’, 원숭이 ‘치치’ 그리고 책의 기록자이자 조수인 ‘토미’다. 그들을 태우고 온 나방은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고, 남은 일행은 달에서의 여행을 시작한다. 커다란 나무와 숲을 지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백합 무리도 만나는 가운데, 둘리틀 박사는 달에서 사는 식물들의 연구에 몰두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자기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일행은, 경계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며칠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달로 초대한 존재가 나타나는데…….
둘리틀 박사의 능력은 너무도 엄청나서, 급기야 달에서 사는 식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동물하고만 말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식물의 흔들림이나 까딱거림 내지는 뿜어내는 향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곤충이랑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을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둘리틀 박사가 마음만 먹으면 지구 정복은 문제도 아니겠구나! 어쩐지 흑화한 박사 버전의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너희 닝겐들은 동식물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지. 이제 게임을 시작해볼까?” 막 이런 대사를 내뱉으면서, 영화 ‘해프닝 The Happening, 2008’처럼 식물을 조종해서 인구수를 조절하거나 원숭이 ‘치치’와 그 무리를 교육시켜 ‘혹성탈출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의 ‘시저’를 만들어내면……. 음, 박사가 선천적으로 온화하고 모든 존재는 살아갈 의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박사와 일행이 달에서 만난 식물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노래하는 나무들이라든지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부드러운 나뭇잎. 그 중에서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백합이었다. 꽃의 지름이 45cm나 달했고, 물이나 거울에 비친 자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지구의 식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했다. 문득 지구에 있는 백합도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둘리틀 박사와 같은 존재가 없으니 그걸 알아볼 방법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와중에 치치가 할머니에게서 들었다는 첫 종교 전쟁, 달과 태양 그리고 지구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한숨이 나왔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은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있을법한 내용이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상대방을 비난한 트집이나 흠을 찾고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전에 어떤 책에서 동물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을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났다. 진짜 둘리틀 박사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동물이 사람과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고 육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축을 하지 않은 달걀이나 우유 정도만 먹지 않을까? 그런데 더 나아가서 만약 식물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면, 과연 인간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나무를 자르거나 꽃을 꺾을 수 있을까?
재미나게 읽다가 갑자기 진지한 질문이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었다. 마지막에 둘리틀 박사와 일행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다. 다음 권에서 어떻게 그 난관을 이겨낼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서 9권이 언제 나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