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1992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포와로의 네 번째 이야기 묶음이다. 지금까지는 단편 위주로 만들어졌는데, 이번 시즌은 특이하게 장편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편당 시간이 좀 길다.
『The ABC Murders』는 장편 ‘ABC 살인 사건 The ABC Murders, 1936’을 영상화했다. 포와로에게 도전장이 날아온다. 날짜를 정해주고 자신이 저지를 범죄를 막아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범인이 예고한 날짜에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A로 시작하는 마을에서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노부인이, B로 시작하는 마을에서는 역시 B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성이……. 희생자들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조사팀과 함께, 포와로는 살인을 막아내려고 노력하는데…….
포와로가 나오는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얼마 전에도 존 말코비치 주연으로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난 이 시리즈가 더 마음에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하고 좋아하는 포와로의 분위기는 이 시리즈의 포와로가 딱이다. 물론 계속해서 드라마를 보고 있기에 세뇌당했는지도 모르지만. 극 초반에 헤이스팅즈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포와로에게 선물을 준다. 바로 그가 직접 잡은 악어 박제! 처음에는 이게 뭔가하는 얼굴이었지만, 선물이라는 말에 좋아하는 포와로의 표정 변화가 재밌다. 이 노인데 공짜 선물이라면 양잿물도 받을 거 같다. 먹지는 않겠지만, 잘 보관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포와로 정도 되는 사람이 살인을 경고하는데 그걸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는 경찰은 뭐지? 지금까지 그가 해결한 사건이 몇 개인데! 그걸로 자기들이 이득을 봤으면 봤지, 손해를 끼친 적은 없는데! 이 사람들이 말이야, 고마운 줄 모르고! 웃음이 나와? 어? 내가 옆에 있었으면 욕을 해줬을 것이다. 그런 비웃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 포와로가 대인배고 보살이다.
『Death in the Clouds』도 역시 장편 ‘구름 속의 죽음 Death in the Clouds, 1935’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한 노부인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명사들의 비밀과 약점을 알고 그것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녀를 죽이고 싶어 했던 사람은 꽤 많았다. 같은 비행기에 탔지만 자는 바람에 결정적인 순간을 보지 못한 포와로. 범행 흉기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가 다 의심스럽기만 한데…….
포와로는 미술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 작품들과 그 작가들에 관해 대화를 나눌 정도니 말이다. 이 남자, 못하는 게 뭘까? 그런데 이 책이 나온 게 1935년이라는데, 그 당시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비행기가 있었단 말인가!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그 사실에 깜짝 놀랐다. 아, 드라마는 시각적으로 옛날 분위기가 나는 여러 가지 요소들 때문에, 지금이 아닌 예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가보다. 책은 읽으면서 장면을 나름 현대식으로 상상하면서 읽고 있었고 말이다.
『One, Two, Buckle My Shoe』도 장편 ‘애국 살인 One, Two, Buckle My Shoe, 1940’이 원작이다. 포와로가 고정적으로 가는 치과의사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포와로가 치료를 받은 다음에! 그리고 곧이어 의사의 고객이었던 두 사람이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은 의사의 고객 명단에 은행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혹시 그를 노린 음모가 아닐까 의심하는데…….
여기서 포와로가 치과에 가는데, 사실 지난 시즌의 『The Theft of the Royal Ruby』를 보면서 그럴 줄 알았다. 거기서 포와로가 밤에 초콜릿 먹고 이 안 닦았다. 드라마의 오프닝이 어쩐지 공포영화가 떠오르는 연출이었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음산하고 느리게 편곡했는데, 문득 영화 ‘나이트메어 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건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출판된 지 70~80년이 넘는 작품들이니 괜찮을 것 같다. 세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두 개가, 범인의 변장 또는 변신이 결정적인 힌트였다. 지금이야 화장 기술이나 여러 가지 특수 효과 기술이 발달해서 변장해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리 발달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 그 당시는 화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만큼, 조명과 같은 다른 과학기술도 지금과 많이 낙후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많이 순진했을 테고. 아, 물론 범인은 제외다.
단편만 보다가 오랜만에 장편을 보니, 느낌이 새롭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