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人蛇大戰, 1983
감독 – 김선경, 장기
출연 - 향운봉, 진수경, 김애경, 고운
6월 15일 공포 영화 동호회인 ‘호러 타임즈’에서 주최한 상영회 때 본 작품이다.
홍콩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엄청난 수의 뱀이 발견된다. 현장 담당과 직원들은 소방서에 신고하고 기다려보자고 하지만, 사장은 그러면 공사 기간이 늘어난다며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포크레인을 이용해 뱀을 죽여버린다. 하지만 숙직을 하던 기사가 뱀 떼에 의해 죽는 사고가 일어나자, 사장은 비서를 시켜 유명한 땅꾼을 고용한다. 그에 의해 거대한 구렁이가 죽자, 사장은 날림 공사를 강행하여 아파트를 완공한다. 완성 파티가 열리던 날, 살아남은 많은 뱀이 또 다른 거대 구렁이의 지휘로 사람들을 습격하는데…….
사람마다 무서움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기에, 이 영화를 보면서 웃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30년 전 작품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특히 몇몇 대사는 듣자마자 빵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난 발이 없는 생명체에게 두려움을 느끼기에 이 작품의 어떤 장면은 화면을 쳐다보기 어려웠다. CG가 아닌 실제 살아있는 수많은 뱀이 꿈틀대는 장면은 으……. 거기다 뱀을 무척이나 잔혹하게 죽인다. 진짜로 죽인다. 모형이나 CG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뱀을! 산 채로! 포크레인으로 찍어 죽이고, 돌이나 망치로 때려죽이고, 바퀴로 갈아버리고, 입으로 물어뜯어 죽이고, 몽구스를 풀어서 물려 죽이고 찢겨 죽이고, 발로 밟아 죽이고, 불로 태워 죽이고……. 뱀을 죽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디서 그 많은 뱀을 구했는지, 또 그 뱀들을 다 죽여도 문제가 없었는지 궁금하다.
그러면 공포일 텐데 왜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난다고 했을까? 우선 첫 번째는 이 영화의 특징 때문이다. 홍콩과 한국의 합작인 이 작품은, 사장의 부인과 딸은 한국 배우이고 그 외는 거의 홍콩 배우를 기용하고 있다. 두 한국 배우는 멜로를 담당하고, 다른 홍콩 배우들은 뱀 떼 위에서 뒹굴다 죽어 나가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한국 배우가 등장할 때는 뜬금없는 멜로 분위기고, 그들이 나오지 않을 때는 뱀과 싸우는 액션 장면이 연출된다. 그런데 그 둘의 온도 차이가 너무 커서, 마치 다른 두 작품을 찍어서 연결한 것 같았다. 적절하게 잘 연결하면 어색하지 않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위에도 적었지만, 영화의 대사였다. 예를 들어보면, 현장 감독은 사장의 딸이 한국 유학 중에 만난 건축학도로 나온다. 우연히 만나는데, 만나자마자 어찌나 플러팅을 해대던지……. 듣다가 손발이 오그라들 뻔했다. 저 때는 그게 낭만적이고 멋있다고 여겨졌겠지? 그러다가 사장이 한국의 지인에게 아파트 건립에 도움을 줄 기사를 소개해달라고 하는데, 마침 같이 있던 딸의 추천으로 일하게 된다. 그런데 사장이 터무니없이 공사 기간을 줄이고 날림 공사를 강요하자, 사장 딸에게 대놓고 너희 아빠는 상도덕이 없다고 비난을 한다. 그러면서 딸이 미안하다고 하자, 그런 건방진 소리 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 말한다. 와, 이 무슨 예의 없는 건방짐이지?
그 외에도 아파트 입주민 중 몇 명의, 분명히 개그 요소라고 집어넣은 것 같지만 웃음보다는 눈살찌푸림이 더 컸던 장면도 있었다. 왜 그 꼬맹이는 처음 보는 어른에게 그따위로 행동하는 건지 모르겠다.
희생된 뱀들이 좋은 곳으로 갔길 바란다. 뱀으로서는 이 영화가 종족 학살을 다룬 실제 기록 영상이나 스너프 필름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품은 뱀 구덩이 속에서 뒹굴어야 했던 인간 배우들이나 뱀들에게 극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특히 입에서 기다란 뱀을 꺼내는 장면이나, 뱀 떼 속에서 얼굴만 내놓고 있는 장면은 으…….
아, 이 작품은 한국판과 외국판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한국판에는 한국 배우가 부인과 딸로 등장하는데, 외국판에서는 다른 사람이 부인과 딸로 나온다. 그리고 외국판에는 한국 배우들이 담당했던 멜로 장면들이 싹 빠져있다. 어떻게 보면 호러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때문에 극의 흐름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내수용보다 수출용에 더 신경 쓰는 건, 자동차나 가전제품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