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 난 솜사탕도 필요해!

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ㅣ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 –서귤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에 이은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분홍색 복숭아인 ‘어피치’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 적혀있는 어피치에 관한 항목을 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힌트를 약간 주자면, 출생의 비밀이라고 할까?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도대체 마음과 엉덩이가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복숭아가 어떻게 보면 하트 모양이고, 또 달리 보면 엉덩이 모양이라서 그렇게 지은 걸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런데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내 빈약한 상상력과 타성에 찌든 꽉 막힌 꼰대 기질을 반성했다. 아, 이런 멋진 발상이! 첫 장부터 마음에 와닿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재치있고 톡톡 튀는 문장도 좋았고, ‘맞아, 맞아’라며 공감하게 하는 감정의 흐름과 사물을 달리 보는 시각도 신선했다. 거기다 페이지마다 들어있는 어피치 캐릭터의 삽화는 글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는 부분에 책갈피를 끼워 넣는 편인데, 이 책은 중간에 포기했다. 너무 많아서 그냥 다 빼버렸다. 차라리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이 있는 페이지를 찾는데 더 빠를 것 같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고르자면, 우선 ‘튜브 머니’라는 단어를 선택하겠다. 물에서 튜브로 떠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출퇴근 길의 지옥철에서 버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튜브 머니라고 한다. 초컬릿, 마카롱, 떡볶이, 곱창 같은 것을 사는데 드는 비용을 뜻한다. 튜브 머니 지수가 높아진다는 건, 그만큼 내가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냥 습관이 되어 나도 모르게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엥겔 지수처럼, 나중에 튜브 머니 지수가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다음으로 인상적인 단어는 ‘스트라이프 티셔츠’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이 입고 다니는 줄무늬 티셔츠 같은, 그러니까 평범하고 흔한 사람을 뜻한다. 저자는 자신을 스트라이프 티셔츠라고 지칭하면서 평범하다는 것이 콤플렉스가 되면서 동시에 평범하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모두가 다 다르면서 닮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두가 다 다른 가운데, 평범함이라는 한 가지가 닮은 누군가를 찾아 인연을 맺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

  ‘치킨 코인’도 기억에 남는다. 모든 소비 비용의 기준을 치킨 한 마리를 시킬 수 있는 금액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흔히 ‘이거 하나 사면 떡볶이가 몇 인분인데.’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영화계에서는 UBD가 새로운 단위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소비자 지수로는 치킨 코인도 괜찮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몽글몽글 분홍색의 달달한 솜사탕이 피어나는 느낌이다. 힘들 때, 우울할 때, 슬플 때, 지쳤을 때, 그 외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 드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슬쩍 꺼내서 한 번 핥아먹으면 딱 좋을, 그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