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1991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포와로 세 번째 시리즈다. 여전히 미스 레몬, 헤이스팅즈 그리고 젭 경감이 번갈아 출연하며 개그 삼총사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거기다 포와로의 다양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삐친 모습, 아프다고 징징대는 모습, 뿌듯해하는 모습,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모습 등등.
『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첫 장편이자 ‘포와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 1920’을 영상화했다. 여기서 포와로는 독일의 침공을 피해 영국으로 막 건너온 뒤였다. 그러다가 모국인 벨기에에서 친분을 맺은 ‘헤이스팅즈’와 재회하고, 스타일즈 저택의 ‘잉글소프’ 부인의 살해 사건을 맡게 된다. 지금 다시 봐도 범인이 사용한 수법은 참으로 독특하면서 영리했고, 그걸 알아차린 포와로는 대단했다. 역시 내 탐정!
『How Does Your Garden Grow?』는 단편집 ‘리가타 미스터리 The Regatta Mystery and Other Stories, 1939’에 실린 ‘당신은 정원을 어떻게 가꾸시나요?’를 각색한 것이다. 자신이 기른 장미 품종을 선보이고자 박람회에 간 포와로. 그런데 한 부인이 상담할 것이 있다며,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포와로와 미스 레몬이 갔을 때는 이미 늦어서, 부인은 사망한 뒤였다.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의뢰를 받고 갔더니 의뢰인이 이미 사망한 경우가 더러 있다. 포와로 잘못이라기보다는 먼저 온 사건을 해결한다거나 교통통신이 그리 빠르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이번 사건의 범인이 사용한 수법은 참으로 독창적이었다.
『The Million Dollar Bond Robbery』는 단편집인 ‘포와로 수사집 Poirot Investigates, 1924’에 수록된 ‘백만 달러 증권 도난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채권을 가져가는 은행 직원과 동행하게 된 포와로와 헤이스팅즈.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니, 금고에 넣어두었던 채권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들이 미국까지 타고 간 배인 ‘퀸 메리’호는 1936년에 첫 출항을 한,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초호화 여객선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그 배의 첫 출항을 그 당시 뉴스 보도처럼 보여주는데, 유명 탐정인 포와로도 배에 탔다고 나온다. 흑백 영상으로 보는 포와로는 색달랐다.
『The Plymouth Express』는 단편집 ‘패배한 개 The Under Dog, 1929’에 있는 ‘플리머스 급행열차’가 원작이다. 재벌가의 외동딸인 ‘플로렌스’가 급행열차를 타고 가던 중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가 갖고 있던 귀한 보석은 사라지고, 경찰은 중간까지 동행했던 메이드의 증언으로 정체불명의 남자를 찾기 시작하는데…. ‘왜 보석을 굳이 갖고 다니냐고! 금고에 넣어둬!’라고 플로렌스에게 말하고 싶었다.
『Wasps' Nest』는 단편집 ‘죽음의 사냥개 The House of Death and Other Stories, 1933’에 수록된 ‘말벌 둥지’를 바탕으로 했다. 젭 경감의 수난기라고 해야 할까? 등장하자마자 병원으로 실려 가다니…. 그나저나 차를 마시고 남은 찌꺼기로 점을 친다는 게 참 신기했다. 포와로도 그런 걸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그가 진짜로 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건 아니다. 이번 에피소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불륜을 저지르는 것들은 죽어도 싸다는 거였다.
『The Tragedy at Marsdon Manor』는 단편집 ‘포와로 수사집’에 실린 ‘마스던 장원의 비극’이 원작이다. 살인사건 의뢰인 줄 알고 갔더니, 의뢰인이 쓰는 추리 소설 얘기였기에 포와로는 실망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집주인이 죽은 채 발견되는데……. 마을에 있는 밀랍인형 박물관에서 자신의 인형을 발견한 포와로의 흐뭇해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젭 경감도 부르고 헤이스팅즈도 부르고. 아, 진짜 노친네가 이리 귀여워도 되는 건가 싶었다.
『The Double Clue』는 단편집 ‘죽음의 사냥개’에 있는 ‘이중 단서’를 바탕으로 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데, 내가 읽은 적이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포와로와 ‘로사코프 백작 부인’의 미묘한 감정 교류가 이상했다. 그가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온 적이 있었던가? 원작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The Mystery of the Spanish Chest』는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The Adventure of the Christmas Pudding and a Selection of Entrees, 1960’에 수록된 ‘스페인 궤짝의 비밀’을 영상화했다. ‘클레이튼’이라는 남자가 시체로 발견된다. 친구 ‘리치’ 소령의 집에 있는 스페인풍 궤짝 안에서. 사실 그는 부인과 친구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음, 클레이튼 부인인 ‘마거리트’가 내가 책을 읽었을 때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난 좀 더 여리여리하고 가냘프면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를 상상했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면, 어디서부터 뭐가 문제였던 걸까? 사랑과 집착은 한 끗 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The Theft of the Royal Ruby』는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에 실린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이 바탕이다. 드라마 제목과 한글 제목이 다르다. 이집트의 왕위계승자가 미인계에 빠져 왕실의 보물인 루비를 도둑맞는다. 포와로는 거의 강압적으로 그 보석을 찾기 위해 어느 집안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한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게 크리스마스 푸딩을 절대 먹지 말라는 쪽지를 보내는데……. 수제 초컬릿 가게에서 원하는 제품을 발견하고 행복해하는 포와로의 모습이 무척 훈훈했다. 그런데 밤에 그걸 먹고 이를 안 닦고 자다니! 포와로, 그러면 안 돼요! 콧수염만 챙기지 말고, 이도 챙겨야죠!
『The Affair at the Victory Ball』는 단편집 ‘패배한 개’에 있는 ‘승전무도회 사건’이 원작이다. 가면무도회에서 ‘크런쇼’ 자작이 살해당한다. 문제는 그의 시체 옆에서 코카인이 든 통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마약을 반대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그의 친구인 코트니마저 죽은 채로 발견되는데…. 포와로가 라디오 생방송에 나가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좀 웃겼다. 아니, 이보시오 영국 사람들! 포와로가 생중계로 살인 사건 해결을 하는데 왜 그런 반응을? 나갔으면 무릎 꿇고 경건하게 듣겠구먼!
『The Mystery of Hunter's Lodge』는 단편집 ‘포와로 수사집’에 실린 ‘사냥꾼 별장의 미스터리’를 영상화했다. 포와로와 헤이스팅즈는 겨울에 열리는 새 사냥에 참여한다. 추운 날씨 때문에 포와로는 병에 걸리고, 한 자산가가 살해당한다. 그리고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가정부마저 사라지는데……. 원작 소설과는 결말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포와로가 병에 걸려서 꼼짝도 못 하지만, 여기서는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물론 헤이스팅즈와 젭 경감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건 비슷하지만. 드라마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