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Rim of the World, 2019
감독 - 맥지
출연 - 잭 고어, 미야 세치, 벤자민 플로레스 주니어, 알레시오 스칼조토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과학 공부만 하는 ‘알렉스’를 보다 못한 엄마는 그를 여름 캠프장으로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젠젠’과 오지랖 넓고 수다스러운 ‘대리어스’를 만난다. 셋은 어쩌다가 프로그램을 땡땡이치고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가브리엘’을 만난다. 그런데 비상 알람이 뜨고, 겨우 돌아온 캠프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와 공중전을 벌이고, 그들의 앞에 비상용 우주선 캡슐이 떨어진다. 뒤이어 그 안에서 나온 여인이 아이들에게 열쇠를 주며, 어느 박사에게 전해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기괴하게 생긴 괴생명체가 아이들을 쫓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십 대 초반의 네 꼬꼬마가 우연히 지구를 구할 열쇠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네 아이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돕기도 하고,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아 투덕거리기도 하고, 그 와중에 각자 가진 비밀을 공유하고,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떻게 보면 네 친구의 성장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그리 잔인하지 않고, 아기자기하고 자잘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구성이 성인 대상 영화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성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물이나 뭔가가 펑펑 터지고, 인간이나 외계인의 손발이 절단돼 여기저기 날리는 그런 외계인 등장 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러면 이건 어린이 청소년 대상 SF 영화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아이들이 주고받는 성적 농담의 수위가 생각보다 세다. 내가 요즘 십 대 초반 꼬꼬마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봤나 보다. 이 나이 먹은 나도 부끄러워서 애인님 앞에서 꺼내지도 못하는 단어들을 마구 내뱉는다.
또한, 여름 캠프장에 있는 직원들이 개그 캐릭으로 등장한 것 같은데, 전혀 재미있지가 않았다. 빨간 머리를 가진 아이에게 ‘당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이들이 있는데도 물고 핥고 빨기에 여념이 없다. 거기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약간의 인종 차별에 외모 평가질까지 한다, 아, 당근이라고 부르는 직원은 ‘빨간 머리 앤’도 안 읽어봤나 보다. 거기서 ‘길버트’가 ‘앤’을 당근이라고 놀렸다가 무슨 일을 당했는데…….
다른 또 하나는 등장인물 중의 하나인 대리어스 때문이다. 그는 수다스럽고 여기저기 다 끼어들며 잘난 척하고 아는 것도 많고 아는 척도 잘 하는 소년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연급 흑인 캐릭터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 애는 가끔 상황에 맞는 영화 제목이나 설정을 툭툭 내뱉는데, 그 영화들이 대개 미성년자 관람 불가 작품들이다. 뭐, 엄마·아빠 몰래 많이 봤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알아차릴 어린이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겠냐는 것이다. 유명한 작품에 관해 얘기한다면 그나마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알아먹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베르너 헤어조크’나 ‘버팔로 빌’이 누군지 아는 청소년이 얼마나 된다고? 거기다 그는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나보다. 처음에 북한의 습격이냐며 젠젠에게 취소시키라는 말까지 건넨다. 이건 북한과 중국의 친밀도를 알고, 동시에 젠젠의 국적을 가지고 놀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과도한 간접광고……. 아이들이 백화점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나온다. 왜 젠젠은 모 스포츠웨어 상표가 정 가운데 오는 머리끈을 하고, 카메라는 왜 신발 상표가 잘 보이게 클로즈업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들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을 하고 싶었는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얘들아, 너희들이 그러는 와중에 너희 엄마·아빠가 외계인 침공으로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 주인공은 귀여웠고, 그들이 하나둘씩 성장할 때마다 어쩐지 내 마음이 뿌듯해지고, 위기 상황을 앞뒀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그동안 매번 팔과 다리가 절단되어 날리고, 고음의 비명과 욕이 난무하고, 죽이고, 뚫리고, 찔리고, 베이고, 고문하고, 펑펑 터지고, 무너지는 그런 고어 작품만 봐왔는데, 오랜만에 별다른 긴장감 없이 힐링하는 기분으로 볼만한 작품이었다.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해, 아니 전기가 끊길 경우를 대비해 디지털이 아닌 물건들도 가지고 있어야겠다. 더불어 스틱 운전도 익혀두면 좋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