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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The Purloining of Prince Oleomargarine, 2017
원작 – 마크 트웨인
작가 – 필립 스테드
그림 – 에린 스테드
황폐한 땅에서 할아버지와 사는 ‘조니’에게는 유일한 친구가 한 마리 있었다. 바로 집에서 기르는 닭 ‘전염병과 기근’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먹을 것이 떨어지자 닭을 팔아오라고 시킨다. 시장으로 떠난 조니는 구부정한 자세로 행진하는 왕의 군대도 만나고,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한다. 조니는 두려움이 눈물을 흘리고, 그런 그의 앞에 한 노파가 나타난다. 조니는 노파에게서 마법의 씨앗을 받는 대신, 친구인 닭을 넘긴다. 씨앗을 심고 노파가 말한 대로 정성스레 기르자, 꽃이 핀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꽃을 먹은 조니에게 스컹크 한 마리가 말을 거는데…….
위에 적은 대략적인 내용이 전반부인데, 여기까지 읽으면 동화 ‘재크와 콩나무’의 변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니가 이제 꽃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왕자를 찾겠구나. 그런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많이 바뀐다. 아, 물론 왕자를 구하러 떠나기는 한다. 그리고 제목에 왜 왕자가 납치가 아니라 도난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건 이야기를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다. 왕자가 사람이 아닌 거냐고? 그건 아니다. 사람이 맞다.
책은 동화이긴 한데, 은근히 여러 가지 분야를 돌려 까고 있다. 독재정치를 펼치는 제멋대로인 국왕, 아이에게 배려 없이 호통만 치는 어른들, 그리고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지 않는 사회 등등. 따뜻하고 감동적인 교훈을 주는 내용이고, 여러 동물과 용이 나오고, 왕자와 공주도 등장하고, 모험을 떠나는 소년과 그를 돕는 동료들도 있다. 그런데 어쩐지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이것 참,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뭐라고 얘기를 못 하겠다.
이 책을 처음 구상한 것은 ‘마크 트웨인’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가 완결을 내지 않고 사망해버려서, 부부 작가가 뒤를 이어 집필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크 트웨인과 부부 작가 중의 남편이 조니의 이야기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어떤 장면이 더 나을지 토론하기도 하고, 극의 진행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세 사람이 안락의자에 앉아 서로 대화를 하면서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어린 소년의 진정한 친구 찾기인데, 그들이 내뱉는 대사는 어쩐지 시니컬하기만 하다. 그중에서 자신의 목청에 지나치게 도취한 사람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거나, 세상 사람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대사는 밑줄 긋고 기억해둬야 할 것 같았다.
책 띠에 ‘마크 트웨인이 딸에게 남긴 단 한 편의 동화’라고 적혀있다. 어쩌면 그 딸은 마크 트웨인 버전의 결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딸에게 말로는 미리 얘기해줬지만, 글씨로 적어놓는 걸 깜박한 걸 수도 있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조니의 모험기가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