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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2disc) - 본편 + 보너스
박훈정 감독, 김다미 외 출연 / SM LDG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The Witch : Part 1. The Subversion , 2018
감독 - 박훈정
출연 - 김다미,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고민시
**** 이 리뷰는 스포일러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싫으신 분들은 살짝 지나쳐주세요. ****
핏자국이 흩뿌려지고 엉망이 된 수십 개의 침대가 있는 어느 건물, 그리고 도망치는 누군가를 추격하는 사람들과 개. 하지만 그들의 추적은 실패로 돌아가고,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도망친 아이가 실험의 후유증으로 오래 살지 못하리라 추측한다. 도망쳤던 여자아이는 소를 기르는 한 부부에게 발견된다. 10년 후, 그 아이는 부부의 손에서 자라 ‘자윤’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이 되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의 치료비와 폭락하는 솟값 때문에 어떻게든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자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다. 절친 ‘명희’와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간 그녀는, 훌륭한 노래 실력과 함께 비장의 기술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 방송을 본 추적자들이 자윤을 찾아온다. 자윤은 영문도 모른 채, 가족과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을 받는데…….
몇 년에 한 번씩, 예상치도 못한 신인 배우를 발견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의 ‘박소담’,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의 ‘김태리’가 그러한 예일 것이다. 그리고 작년에는 무려 두 배우나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김다미’와 친구로 나온 ‘고민시’다. 김다미는 거의 1인 2역에 가까운 변신을 보여줬다. 초반에 기차에서 달걀을 꾸역꾸역 먹는 소녀와 후반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말하는 소녀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또한, 김민시의 찰진 욕이 적절히 섞인 학생 연기와 능청스러운 연기는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연기인지 진짜 본모습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게다가 둘은 어찌나 찰떡궁합인지, 같이 나올 때 더 효과가 굉장했다. 오디션을 위해 서울로 가는 열차 장면은 일 초라도 눈을 돌리면 아까울 정도로 둘의 케미가 확실히 드러난 부분이었다.
후반부에 몰아치듯이 나오는 액션 장면 역시 괜찮았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능한 과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만들어낸 초능력자들답게, 주먹질 몇 번 발길질 몇 번 하다 끝나는 시시한 싸움 따위는 하지 않았다. 뭐랄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제목은 잊었지만, 어릴 적에 본 능력자인 소년·소녀들이 나와 주위를 초토화하면서 싸우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아, 이젠 영상으로 이런 연출이 가능해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두 배우의 연기와 후반부의 액션 장면을 빼면, 장점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의 장점을 액션 장면이라고 하기엔, 분량이 너무 적었다. 그리고 기본 설정은 잘 잡혔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의 설정이 좀 허술했다.
우선 첫 번째, 추적자들은 무슨 이유로 대낮에, 그것도 사람이 많은 오디션 생방송 날에 방송국 앞에서 자윤을 데리고 가려 했을까? 누군가를 납치하려면 좀 은밀하게 으슥한 곳에서 약간 어두워질 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추리호러SF판타지 소설이나 범죄 실화집 그리고 범죄 재연 프로그램을 봐도, 대부분의 납치 사건은 그러했다. 설령 대낮에 납치한다고 해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나왔다. 그런데 그들은 자윤과 어정쩡하게 대치 상황을 벌이다가, 명희의 재치있는 행동으로 놓치고 만다. 동네 양아치 조폭도 안 할 초보적인 실수다. 아니, 삥뜯는 중학생들도 안 하는 짓이다. 아, 설마 폭력을 싫어하고 신사적이며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그들이 초반과 후반에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그런 가설은 설득력을 잃는다.
두 번째, 기차에서 만난 자윤의 실험실 동기들은 왜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걸까? 그것도 아주 쉬운 감탄사 같은 말들만 영어로! 명희의 아버지가 경찰인데, 그들이 미국에서 왔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설정상, 그들은 실험 때문에 학습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마치 미국에 한두 달 갔다 와서 간단한 제스쳐나 인사말만 익히고 온 애들 같은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 차라리 그들이 각각 다른 나라 언어로 말하는 거로 설정하면 어땠을까?
세 번째, 왜 제작진은 ‘닥터 백’ 캐릭터를 그 정도로밖에 활용하지 못했을까? ‘조민수’라는 연기 잘 하는 배우를 데려다 놓고, 그야말로 설명충 내지는 스피드웨건으로의 역할밖에 부여하지 않았다. 거의 10여 분 동안, 닥터 백은 자기소개와 더불어 조직의 설립목적과 활동 사항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어떤 실험을 했는지, 자신의 임무는 무엇인지, 조직 수뇌부와의 갈등, 실험의 여파 그리고 자윤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관해 얘기한다. 과거 영상과 함께 해설을 시작하는데, 무슨 다큐멘터리 보는 줄 알았다. 완전 재능 낭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 설마 나레이션을 지루하지 않게 감정의 변화를 목소리에 실어 잘 할 수 있는 배우를 섭외한 건가? 분노와 유쾌함, 희열과 감동, 기쁨, 자뻑, 차가움 그리고 감탄 등을 해설에 적절히 잘 섞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한 사람의 입을 빌려 거의 10여 분 동안 설정을 얘기하게 만드는 것부터 시나리오의 허술함이라 생각한다. 아, 물론 이건 악당이 주인공을 잡아두고 주저리주저리 자기 사정을 얘기하다가 반격을 당하는 고전적인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10여 분은 너무 길었다.
그나저나 영화는 고대 벽화부터 시작해 중세와 근현대 그리고 나치와 20세기 초까지 행해졌던 여러 가지 생체실험에 대한 기록 사진으로 시작한다. 음, 인간에 대한 생체실험이 몇 천 년 동안 내려온 인간의 습성이라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조직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었다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