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1989
출연 – 데이빗 서쳇 David Suchet, 휴 프레이저
‘미스 마플’ 드라마 시리즈를 다 봤으니, 이제 ‘포와로’ 시리즈를 볼 차례다. 미스 마플과 달리 드라마 편수가 어마어마하다. 아무래도 ‘아가사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탐정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애정을 보였던 캐릭터답다. 1989년부터 2013까지, 총 24년 동안 13시즌에 걸쳐 무려 70편에 달하는 분량이다. 게다가 그동안 주인공인 포와로를 맡은 배우는 단 한 사람! 아무래도 이 드라마는 데이빗 서쳇이 평생을 바쳐 출연한, 그의 인생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포와로라고 하면, 그가 먼저 떠오른다. 비록 내가 처음 본 포와로는 ‘피터 유스티노프’였지만 말이다.
1시즌은 포와로가 나오는 단편들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흐음, 미스 마플도 단편 많은데, 왜 다 안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The Adventure of the Clapham Cook』은 단편집 ‘리가타 미스터리 The Regatta Mystery and Other Stories, 1939’에 수록된 ‘클래펌 요리사의 모험’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과 다르지 않은 전개로 흘러간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라도 자기 땅이라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니, 서양이건 동양이건 역시 땅이 제일인가 하는 생각이…….
『Murder in the Mews』는 단편집 ‘죽은 자의 거울 Murder in the Mews and Three Other Poirot Cases, 1937’에 있는 ‘뮤스 가의 살인’을 바탕으로 한다. 과거 때문에 빛나는 미래를 포기한 희생자가 너무 안쓰러웠다. 다른 사람이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가지고 협박하는 놈이 제일 나쁘다.
『The Adventure of Johnnie Waverly』는 단편집 ‘쥐덫 Three Blind Mice and Other Stories, 1950’에 실려있는 ‘조니 웨이벌리의 모험’을 드라마화했다. 비슷한 유형을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읽은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한참을 고민했다. 하긴 유괴 사건은 차고도 넘치니까…. 헤이스팅즈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좋아하는 포와로가 귀여워 보이는 에피소드였다.
『Four and Twenty Blackbirds』는 단편집 ‘쥐덫’에 있는 ‘스물네 마리의 검은 티티새’가 원작이다.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니, 이쯤 되면 사람들이 포와로에게 사건을 물어다 주는 것 같다.
『The Third Floor Flat』은 단편집 ‘쥐덫’에 있는 ‘4층 아파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늦은 밤에 아파트 계단에서 노래 부르는 몰상식한 인물들 때문에 좀 화가 났다. 도대체 그 나이를 먹도록 밤에 떠들면 안 된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따위로 행동했다는 거? 그나저나 스릴러 장르의 연극을 보러 가서 범인 추리에 실패한 포와로와 그걸 보고 즐거워하는 헤이스팅즈의 표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Triangle at Rhodes』는 단편집 ‘죽은 자의 거울’에 실린 ‘로도스 섬의 삼각형’을 드라마화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떠오르는 법이다.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막장 드라마 요소를 찾아내고,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호러 장르 요소를 찾아내는 법이다. 이 에피소드는, 그런 사람들의 습성을 범인이 잘 악용했다고 볼 수 있다.
『Problem at Sea』는 단편집 ‘리가타 미스터리’에 수록된 ‘해상의 비극’이 원작이다. 크리스티의 장편 소설이 떠오르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였다.
『The Incredible Theft』는 비슷한 작품을 읽었는데 어디에서였는지 못 찾았는데, 검색해보니 단편집 ‘The Under Dog, 1929’에 있는 ‘잠수함의 설계도’와 똑같다고 한다. 비교해보니 사라지는 문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 차이일 뿐이었다. 다른 작가의 단편이 더 떠올랐다는 건 비밀! 2차 대전 전의 상황이라, ‘무솔리니’나 ‘히로히토’ 그리고 ‘히틀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 포와로가 그렇게 오래된 인물이었던가 하고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영국 공무원들은, 서류 관리를 좀 잘해야겠다. 걸핏하면 도둑맞고 잃어버리고 말이야! 자기네 나라에는 포와로나 ‘홈즈’ 있다고 너무 마음 놓는 거 아냐?
『The King of Clubs』는 단편집 ‘패배한 개 The Under Dog, 1929’에 실린 ‘클럽의 킹’이 원작이다. 왕족과 결혼하고 은퇴할 예정인 유명 배우, 그런 그녀를 놓아주기 싫어 비겁한 수를 쓰는 기획사 사장. 문득 요즘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씁쓸해지는 에피소드였다.
『The Dream』은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The Adventure of the Christmas Pudding and a Selection of Entrees, 1960’에 수록된 ‘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팔리’라는 부호가 이상한 조건을 걸면서 포와로를 초대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이상한 꿈에 관해 얘기한다. 며칠 후, 팔리는 포와로에게 얘기한 꿈과 같은 방법으로 죽은 채 발견되는데……. 자기는 좋은 고용주라면서 혼자 흡족해하는 포와로가 좀 어이없었다. 사건 해결에는 천재인데, 다른 분야에서는 영……. 미스 레몬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미스 레몬의 앞머리는, 충격적이었다. 저게 가능한 거야? 저렇게 하고 나오려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