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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믿지 않는 마술사 안톤 씨
라르스 바사 요한손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Den stora verklighetsflykten, the great reality escape, 2015
작가 - 라르스 바사 요한손
마흔 다섯 번째 생일을 혼자 자축한 ‘안톤’. 그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돈이 거의 되지 않는 곳에서만 공연하는 마술사이다. 양로원에서 공연을 그럭저럭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도로에 놓인 빨간 소파에 충돌하고 만다. 견인차를 부르기 위해 길을 헤매던 그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 꽃을 꺾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매몰차게 외면한다. 겨우 ‘군나르’와 ‘그레타’라는 노부부의 집을 발견한 안톤. 그런데 그를 본 노부부가 이상한 말을 한다. 안톤이 죽음에 이르는 ‘요정’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지만, 숲을 벗어나면서 노부부의 말처럼 그에게는 안 좋은 일만 계속해서 일어난다. 결국 노부부에게 돌아간 안톤은 요정의 저주를 풀고자, ‘숲의 여왕’이 내는 세 가지 시험을 받기로 하는데…….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안톤의 삶은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친구 ‘세바스티안’과 같이 마술을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둘은 멀어졌다. 안톤은 그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다 생각한다. 부모의 관심도, 첫사랑이었던 ‘샬로타’도 그리고 성공과 부까지. 안톤은 그 모든 것에 화를 냈고 친구의 탓을 했으며 다른 이에게 까칠했고 매사에 불만투성이였다. 이 책은 그런 그가 환상과도 같은 세계에 발을 디디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휴대 전화라든지 GPS 또는 이메일을 누구나 사용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마녀라든지 요정, 신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건 어렵다. 비록 안톤의 직업이 마술사이긴 하지만, 그건 트릭이 존재하는 것으로 눈속임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저주나 유령은 그런 게 아니다. 그 때문에 한국어판 제목이 ‘마법을 믿지 않는 마술사’인 모양이다. 아, 원제는 ‘위대한 현실 탈출’이라는데, 어쩐지 한국판 제목이 마음에 든다. 이야기의 내용과도 더 어울리는 것 같고 말이다.
이야기는 현재 안톤이 티베덴 숲에서 숲의 여왕이 내린 시험을 보는 과정과 그가 회상하는 과거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숲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안톤은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그건 아마 책에 적혀있던 대로, 한참동안 엉엉 울 정도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깊숙이 숨기고 있던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읽던 나도 울컥했다. 그렇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심각하거나 울적해지는 장면도 더러 있었지만, 신비의 숲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환상적이었고 유머러스했다.
게다가 경계를 넘어서 현대 사회와 마법의 세계가 공존하는데, 그렇게 어색하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안톤의 두 번째 시험은 숲의 사람과 아스팔트 보행자라고 지칭하는 숲 바깥사람의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그 부부의 일상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오면, 집에는 유령이 있고……. 과학과 마법이 절묘하게 이어진 삶이라는 생각과 함께, 유령이 무섭지 않으면 꽤 재미있는 일상이 아닐까라는 호기심도 들었다.
안톤은 마법을 믿지 않았지만, 그에게 일어난 일은 마법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 일들은 안톤이 생각하는 관점을 바꾸고,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결국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까?
물놀이 할 때는 구명조끼를 꼭 입고 눈썰매는 여름에 사야 싸다는 유령의 충고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웃겼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