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Marple, 2007
출연 - Geraldine McEwan
이번 시즌에도 각각 한 시간 삼십 분에 달하는 총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네 편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그래서 언제나 시간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At Bertram's Hotel』는 소설 ‘버트램 호텔에서 At Bertram's Hotel, 1965’를 바탕으로 했다. 소설의 세세한 캐릭터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소설에서처럼 나치 전범에 보석 도둑에 횡령 같은 다양한 범죄들이 동시에 호텔에서 벌어진다. 초반에 트럼펫(이 맞나?)을 부는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흑인 재즈 연주가가 등장하는데, ‘루이 암스트롱’이라고 나온다. 역시 루이 암스트롱이라고 하면 그 걸쭉한 목소리지! ‘제인 마플’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제인 쿠퍼’라는 메이드가 등장하는데, 미스 마플 못지않은 추리력을 보여준다. 다만 아직 어려서 경험이 부족했다고나 할까? 두 제인의 활약이 눈부셨다.
두 번째 이야기인 『Ordeal by Innocence』는 소설 ‘누명 Ordeal by Innocence, 1958’을 원작으로 한다. 원래는 미스 마플이 등장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등장인물의 지인으로 출연한다. 입양한 아이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주겠다며 모든 것을 자신이 좌우한다면, 그건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고 살인을 용납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책임감과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삶을 주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행스럽게도 원작에서처럼 커플이 맺어지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Towards Zero』도 소설 ‘0시를 향하여 Towards Zero, 1944’을 차용한 것이다. 원래 다른 사람이 탐정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과감히 그를 빼버리고 미스 마플을 투입했다. 대신 원작의 그 사람이 맡은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덧입혀서, 인물의 수를 줄이고 각자의 개성을 부각했다. 미스 마플은 여기서도 인물 중 한 사람의 지인으로 등장한다. 결혼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이 가득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이야기인 『Nemesis』은 소설 ‘복수의 여신 Nemesis, 1971’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처음에는 내가 기억하는 그 작품이 맞나 의아했다. 등장인물의 설정이 바뀌니 자연스레 배경도 바뀌고 상황도 달라졌다. 특히 살인의 동기가 원작과는 차이가 났다. 그런데 그걸 말하자니 너무 스포일러가 되는 거 같고……. 그냥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만 적어야겠다. 누구보다 사랑받을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삶이 안타까웠다. 소설에서보다 드라마가 더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준 거 같다.
그리고 이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데, 이번 시즌에서 미스 마플의 지인으로 등장한 사람은 거의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김전일’이나 ‘코난’은 그래도 자기와 제일 친한 사람은 살려줬는데, 미스 마플은 그런 게 없었다. 아, 별로 안 친해서 그런가?
재벌과 유서 깊은 귀족에서부터 고아까지 그리고 국적을 가리지 않는 미스 마플의 다양한 인맥을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미스 마플의 학교 친구 중에 꽤 유명인들이 있는 걸 봐서, 그녀도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기숙 학교에 다닌 것 같다. 하긴 그러니 시골에서 정원이 있는 집에다가 하녀를 두고 독신으로 유유자적하게 여행 다니면서 살아가는 거겠지!
*검색하다가 미스 마플 역할을 맡았던 배우 ‘제랄딘 매큐언’ 할머니가 2015년에 사망하셨다는 걸 알았다. 안녕히 가세요, 미스 마플. 잊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