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시리즈
넬리 블라이 지음, 오수원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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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서 - Ten Days in a Mad-house, 1887

  저자 - 넬리 블라이







  예전에 ebs 방송국의 ‘지식채널 e’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라는 제목의 다큐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1972년 ‘데이비드 로젠한’이라는 정신과 의사와 7명의 사람들이 가짜 증상으로 정신병원 입원에 성공한 실험을 다룬 내용이었다. 로젠한은 이 실험으로 정신병적 행동과 정상적인 행동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신의학의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당시 이 방송은 캡쳐되어 블로그라든지 카페에 게시되었다.



  그런데 로젠한보다 거의 110년 먼저, 정신병원의 부패와 정신과 의사의 태만을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넬리 블라이’였다. 탐사 보도 전문 기자로, 이후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가능한 지 직접 여행도 해보고 1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기자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이 책은 넬리 블라이가 정신병원에 가기 전부터 어떻게 준비를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가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병원에서의 첫날부터 퇴원할 때까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환자를 학대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블렉웰스 섬의 정신병원에 일부러 입원한다. 그곳에서 열흘 동안 환자로 있으면서, 그녀는 많은 수의 환자들이 학대와 방치 그리고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를 받고 있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병원장과 의사들의 방치와 태만, 간호사들의 억압과 우월의식, 그리고 횡령과 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넬리 블라이와 로젠한의 차이점을 꼽아보자면, 넬리는 병원의 악행과 부조리함을 폭로하기 위해 잠입했다면 로젠한은 정신의학의 부정확함을 알리기 위해 입원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입원하기 전에 만난 의사들은 제대로 된 진단을 하지 못했고 병원에서 만난 의사들 역시 그러했으니, 넬리 블라이도 정신의학의 부정확함을 꼬집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마음 아프고 화가 나는 사례들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병원에 오게 된 사람이나, 한겨울에 냉수로 목욕을 시키는 바람에 감기에 걸려 죽어갔던 사람, 그리고 간호사들의 가혹 행위에 반발했다가 학대를 당하고 결국 미쳐버린 사람 등등…….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친척이나 가족들이 재산문제로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병원에서 가혹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었다. 넬리 블라이가 정신병원의 악행을 폭로한 지 13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강제입원과 가혹 행위는 끊이지 않은 모양이다. 뉴스가 떴을 때만 고쳐야 한다며 반짝 난리를 피우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인간의 본성인걸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2 Asylum’가 떠올랐다. 거기에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몰래 잠입하는 기자가 등장한다. 병원에 입원한 연쇄 살인마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모델이 넬리 블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이라는 추측을 해봤다.



  관련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모든 일에는 처음 시작한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지워졌거나 잊힌 위인들, 그 중에서 특히 여성들에 관련된 책이나 영화 등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넬리 블라이 역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초등학생인 친구의 딸들에게 이런 멋진 여성을 알려줄 기회가 생겨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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