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Pretty Girls, 2015

  작가 - 카린 슬로터





 

  캐럴 가에는 세 딸이 있었다. 부모는 세 딸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으며, 자매들의 우애도 돈독했다. 하지만 대학생이었던 맏딸 ‘줄리아’가 실종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 후 결국 자살하고 만다. 둘째인 ‘리디아’는 가족과 연을 끊고 마약을 시작한다. 막내인 ‘클레어’는 ‘폴’과 결혼하지만, 가끔 불안증을 보이며 사고를 친다.



  24년 후, 리디아는 약을 끊고 딸 ‘디’를 낳아 나름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클레어는 폴과 식사를 하고 나오다 강도를 만난다. 그녀는 남편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했다. 게다가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집에는 강도가 들고, FBI가 남편이 횡령을 했다고 찾아오며, 남편의 동업자는 알지도 못하는 파일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무엇보다 더 끔찍한 일은, 클레어가 남편의 컴퓨터에서 이상한 동영상을 발견한 것이다. 영상 속에서 묶이고 살해당하며 강간당하는 소녀의 얼굴이 최근에 실종된 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클레어는 경찰을 찾아간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영상이 가짜라고 그녀를 돌려보낸다. 클레어는 영상이 진짜라고 확신하고, 언니 리디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몇 장 읽지 않아, 앞으로 책이 어떤 방향을 전개될 것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힘들었다. 탐정이나 경찰이 주인공인 스릴러 같은 경우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관련자가 주인공인 경우에는 그런 통쾌함과 동시에 억울하고 답답함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엉겁결에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책은, 피해자와 그 관련자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고,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계속된다. 게다가 두 주인공은 트라우마까지 갖고 있다. 바로 큰언니인 줄리아의 실종과 이어진 사람들의 반응, 아버지의 자살 등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리디아는 동생 남자친구의 성추행과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기억이, 클레어 역시 믿었던 언니에게서 배신당했다는 충격 등이 계속해서 그들을 괴롭혔다.



  그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피해자였다. 그러니 그들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은 각 챕터의 사이에 자매의 아버지인 ‘샘’이 죽기 전까지 쓴 일기가 들어있다. 거기에는 그가 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줄리아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적혀있었다. 큰 딸에 대한 애정과 다른 두 딸을 보호하기 위한 그의 다짐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두 자매가 찾아낸 증거와 추측, 그리고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진실은 무척이나 잔인했다. 아, 영상이 등장했을 때부터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밝혀진 진실은 그 상상을 뛰어넘어 더 무시무시하고 끔찍했다. 이 책의 범인은 무척이나 잔인하고 끔찍했으며 영악한 거짓말쟁이였다. 아마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순위권에 들어갈 역대급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범인뿐만 아니라, 공모자들 역시 완전히 미친놈이다. 어떻게 사람이 밖에서는 실종된 딸을 찾는 부모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척하면서, 안에서는 그 딸을 고문하고 강간하면서 환하게 웃을 수가 있지?



  이게 소설에서나 볼법한 일이라고 넘길 수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까지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 친구와 공모해 초등학생을 죽이고 시신의 일부를 나눠가진 소녀들이 있었고, 딸의 친구를 죽이고 사체 유기를 한 남자의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피해자 가족들이 딸을 찾아 헤맬 때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속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슬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설에서는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했다는 점만 달랐지,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 지구상 어디선가에는 영상을 만들어 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장 흔한 예로는 IS의 포로 참수 장면 같은 거…….



  그런 것을 경찰이나 탐정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의 시점에서 서술하기에 책장 넘기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러면서 또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궁금하고, 그 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빨리 알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지는 못하고 고개를 돌려 심호흡 한 번 하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 정도로 책은 재미있었다.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클레어의 테니스 클럽 친구가 몰래 약을 탄 술을 먹고 집단강간당한 여학생을 비난하는 대목이 있다. 왜 여자가 그런 곳에 가서 술을 먹고 그래? 그건 다 피해 여학생의 잘못이야. 그러자 테니스를 치던 클레어가 고의인지 실수인지 그런 말을 한 친구에게 부상을 입힌다. 그리고 말한다. 왜 테니스를 쳐서 다치고 그래? 그건 다친 네 잘못이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클레어를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읽는 나는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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