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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 상 - 오지로와 오구로
이마 이치코 글 그림 / 시공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百鬼夜行抄 尾白と尾黑, 2009
부제 - 오지로와 오구로
작가 - 이마 이치코
다음 권을 기다리다가 복습에 복습하고, 마침내 단행본이 나왔을 때 ‘우와!’하면서 다시 복습하는 만화 시리즈가 여럿 있다. 그중에는 결국 포기하고 기억에서 지운 작품들도 있는데, 이 만화 역시 그런 유형에 들어간다. 이 만화를 처음 접한 건 아마,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그림체가 그냥 그래서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재미있다는 추천에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천해준 분에게 무척 감사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아주 뒤늦게야 특별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다.
괴기 소설가이자 요괴와의 계약자였던 영능력자 할아버지의 능력을 제일 강하게 물려받은 주인공 ‘리츠’. 처음 등장할 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불행히도 요괴들과 이런저런 일에 얽히면서 재수까지 하게 된다. 그런 그를 돕는 것은 할아버지가 손자의 안전을 위해 남겨둔 요괴 ‘아오아라시’와 할아버지의 능력이 약하게 남아있는 두 사촌 누나 ‘츠카사’와 ‘아키라’이다. 사실 아키라는 자기도 모르게 요괴들을 불러일으키는 성향이라 사건·사고를 몰고 다닌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리츠를 주인으로 섬기는, 천방지축 까마귀 요괴가 있으니 바로 이번 특별편의 주제인 ‘오지로’와 ‘오구로’다.
이 책에는 오지로와 오구로가 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중에서 인기투표로 엄선된 열 한가지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그들의 첫 등장인 『나무새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그들이 요괴가 되었는지 엿볼 수 있는 『천상의 우두머리』, 요괴 주제에 다른 요괴에 속아서 결혼할 뻔한 『푸른 비늘』 이외에도 다양하다.
알고 보면 둘은 이 시리즈에서 몇 안 되는 개그 담당 캐릭터들이다. 특히 인간 세상에 대해 잘 모르기에, 리츠가 수험생에서 재수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 주인님은 변신도 하신다며 이제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는지 궁금하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요괴들 때문에 대입을 망친 리츠에게는 복장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인간으로 변신한 모습은 현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라, 요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누가 먼저 리츠의 신임을 얻느냐는 것으로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은 그냥 재밌고 귀엽기만 하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침부터 까마귀 두 마리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지만.
책은 인간과 요괴가 같이 사는 세상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두 세계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만, 간혹 흐릿하거나 무너질 때가 있다. 그건 대개 인간이 집착이나 욕심 또는 사랑이나 원한에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선을 넘은 인간은 요괴에게 유혹당하거나 요괴가 되고 만다. 물론 요괴도 선을 넘어서는 때가 있다. 너무 사악하거나 반대로 너무 선량해서. 작가는 그런 미묘한 순간을 참 잘 그리고 있었다. 때로는 서글프고, 아쉽고, 그러면서 동시에 오싹하다는 느낌을 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스라한 안개가 낀 것 같은 기억 저편의 그리운 뭔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분위기를 이야기에 잘 표현했다.
그래서 요괴가 나오고 사람이 죽어 나가거나 저주에 걸리고 피와 살점이 튀기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 읽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애틋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