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The Wrath
감독 - 유영선
출연 - 서영희, 손나은, 이태리, 박민지
1986년에 만들어진 ‘여곡성’의 리메이크작이다. 그런데 영제가 다르다. 1986년 작은 ‘Woman's Wail’인데, 2018년 작은 ‘The Wrath’이다.
이 대감 집에는 괴이한 일이 연이어 벌어진다. 위의 두 아들이 비명횡사하고, 대감은 행방이 묘연하다. 그러던 중 막내아들과의 결혼하기 위해 ‘옥분’이 도착한다. 막내아들은 절에서 강탈해온 검으로 귀신을 죽이겠다 하지만, 되레 목숨을 잃고 만다. 다들 양반집 출신인 시어머니 ‘신 씨’와 손윗동서들은 옥분을 종처럼 부리며 구박한다. 그러던 중 옥분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녀는 며느리로 인정받게 된다. 우연히 들어간 창고에서 옥분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시아버지 이 대감을 발견한다. 신 씨 부인은 ‘해천비’라는 무당을 불러 집안을 괴롭히는 귀신을 퇴치해달라 부탁한다. 귀신은 이제 옥분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노리는데…….
원작과 등장인물 부분에서 몇 가지 달라졌다. 우선 막내아들의 성격이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정의감 넘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약간 불량배 내지는 쓰레기 같았다. 옥분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뭐랄까, ‘네까짓 게 우리 집안에?’ 내지는 ‘몸매는 괜찮겠네.’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양반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평민이나 노비 여자들 한두 번 손댄 게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귀신을 잡는 칼도 원작에서는 스님이 성공을 빌면서 건네줬는데, 여기서는 그냥 강탈해온다. 부처님한테 108배를 올리며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허락도 안 받고 스님 것을 갖고 간다.
그리고 원작에 있던 마당쇠 ‘떡쇠’는 사라지고, 대신 ‘해천비’라는 무당 캐릭터가 투입된다. 그런데 떡쇠같은 깊은 인상은 주지 못했다. 그냥 잘생긴 젊은 캐릭터 하나 넣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그 때문에 결말이 많이 달라졌다. 원작에서는 옥분이 가슴에 새겨진 ‘卍’ 자에서 나오는 레이저빔으로 귀신과 대결을 벌인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대결을 해천비가 대신한다.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레이저빔이 없다니! 게다가 옥분이, 아! 이건 스포일러인데 어떡하나……. 하여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익숙함이 느껴졌는데, 그건 바로 영화 ‘링 The Ring リング, 1998’이었다. 결말에 관한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하여간 등장인물이 바뀌어서 결말이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결말을 바꾸기 위해 등장인물을 새로 투입한 건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갔는데, 며느리들 사이의 갈등과 고부간의 갈등을 더 집어넣었다. 하지만 조금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원작 ‘여곡성’은 한국 공포 영화의 고전 명작이고 아직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오싹함을 주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이번 리메이크작은 그런 부분에서는 많이 약했다. 어쩌면 이건 원작에서 이미 충격과 공포를 겪어서 면역된 게 아닐까 싶다. 리메이크작의 최대 적수는 원작일 테니 말이다. 그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집어넣은 모양이다. 특히 임신을 전후로 평민 출신에서 집안의 권력을 쥐게 된 옥분의 변화는 놀라웠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했던 손윗동서에게 반격하는 부분은 씁쓸하기까지 했다. 조선 시대에 여자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아들을 통해서라는 게 안타까웠다. 문득 영화 ‘궁녀, 2007’가 떠올랐다. 거기서도 여자들이 ‘왕’이라는 한 명의 남자를 통해 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온갖 암투를 벌였다. 여기서도 배 속에 있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아기 하나 때문에 옥분은 양반 집안의 손윗동서들을 누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갈등이라는 것도, 사실 손윗동서들이 너무 멍청해서,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 씨 부인을 맡은 ‘서영희’ 씨는 훌륭했다. 다만 결혼한 아들을 셋이나 갖기에는 너무 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원작과 달리 계모라는 설정이었다. 하여간 이 영화에서 제일 눈에, 아직 유일하게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 씨 부인을 나이가 지긋한 중년 배우가 하고, 서영희 씨가 옥분 역을 맡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옥분 역을 맡은 배우는 발성부터 새로 배워야 할 거 같았다. 다른 배우들은 소리가 또렷하게 잘 들리는데, 이 배우는 그냥 입안에서 웅얼웅얼 내뱉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발성부터 제대로 안 되는데, 표정 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원작을 떠올리면, 무척이나 많이 아쉬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