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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원제 - ぼぎわんが,來る, 2018
작가 - 사와무라 이치
어릴 적, 외가에 놀러 갔던 ‘히데키’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한 여자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부르며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이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히데키는 곧이어 그 사람이 예전에 죽은 외삼촌을 찾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가 소리치는 바람에 그냥 가버리긴 했지만,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덧 성인이 된 그는 ‘가나’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로 누군가 그를 찾아온다. ‘치사’의 일로 그를 만나고 싶다는 용건이었다. 동료가 건넨 말을 들은 히데키는 오싹함을 느낀다. 치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첫 아이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데…….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히데키의 입장에서 서술된 ‘방문자’이고, 2장은 가나의 시점에서 1장 이후에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3장 ‘제삼자’는 1장부터 사건에 관여하고 있던 컬트 작가 ‘노자키’가 이야기의 결말을 들려준다.
1장과 2장을 읽으면서, 같은 사건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에서 히데키는 누구보다 자상한 남편이었고 육아에 노력하는 아빠였다. 하지만 2장에서의 그는 전혀 달랐다. 왜 영능력자인 ‘마코토’가 히데키를 보자마자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 마코토의 대사를 읽고 이게 무슨 소린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럴만했다. 배려심이 부족하고 내가 좋으면 남에게도 당연히 좋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의 얼마나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은 다른 두 인격체의 만남이라는 걸 잊고, 부부는 당연히 일심동체라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상대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런 것도 하는 나’의 모습에 도취하여 남에게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도 잘 드러나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보기왕’은 서양의 ‘부기맨’이 변형되어 전해진 존재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흡혈귀의 성격도 갖고 있으며, 학습 능력이 있어서 더 교묘하고 발전된 수법을 사용한다. 그 부분에서 문득 우리의 불고기와 김치를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이 떠올랐다. 설마 이 사람들, 흡혈귀와 부기맨도 일본에서 왔다고 우기려는 걸까? 물론 책에서는 서양에서 부기맨 전설이 전해졌다고 나왔지만…….
하여간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보기왕은 가족 사이에 빈틈이 있을 때 비집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산으로 데리고 간다고 한다. 보기왕이라는 존재가 생기게 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했건 아니건, 인간은 자기들이 감당하지 못할 존재를 만들어놓고 결국 그것에 잡아먹힌 것이다. 가정의 붕괴가 가져온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히데키 집안 같은 경우에는 대를 이어 보기왕에게 쫓겨야 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가정 붕괴에 관한 기사가 넘칠 정도로 많이 쏟아져나온다. 부모에게 맞아 죽은 어린아이들이라든지, 남편의 폭력으로 희생된 부인, 친부에게 강간당한 어린 딸들 등등. 만약 한국에도 보기왕같은 존재가 있다면, 무척이나 신나서 다닐 것 같다. 눈만 돌리면 먹잇감이 즐비할 테니 말이다. 뷔페, 아니 무한리필 집에 온 기분일까?
책은 아이를 갖고 싶었던 사람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사람을 등장시켜, 부부와 자녀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런 부분은 참 마음에 들었다. 오싹함과 동시에 생각할 여지를 주다니! 하지만 3장 결말 부분에 가서는 음, 액션 활극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조금씩 스멀스멀 뭔가 기어오면서 긴장하게 만드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에네르기 파가 난무하는 그런 느낌?
그나저나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339페이지에 ‘그 애는 제 힘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나머지 저와 똑같든지, 그 이상의 힘을 얻으려고 한 모양이에요. -중간 생략-도코토에게 존경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부분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지긋지긋한 데 왜 그 이상의 힘을 얻으려고 한 거지? 존경심을 갖고 있는데 왜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거지? 모르겠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자, 빨리 출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