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 The Breakdown, 2017년

  작가 - B.A. 패리스







  * 어쩌면 중요한 힌트를 주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캐시’는 폭풍우가 몰려오자,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숲길로 차를 몬다. 숲 중간쯤에 차 한 대가 멈춰서있는 걸 발견하고 잠시 멈췄지만,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그냥 집으로 와버린다. 다음날, 그녀는 숲에 세워진 차 안에서 자신 또래의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얼마 전에 알게 된 ‘제인’이라는 사실에, 캐시는 절망한다. 그런데 그 이후, 그녀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남편 ‘매튜’가 출근한 이후에만 걸려오는 전화라든지,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물건이 배달되거나, 기억에 없는 친구들과의 약속 등등. 게다가 누군가 집에 침입했던 것 같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 캐시는 혹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조기 치매가 발병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는데…….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것은 잘 골랐다고 자화자찬을 할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내가 왜 그랬을 까라며 밤에 이불을 펑펑 찰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캐시 역시 선택을 해야 했다. 폭풍우 치는 밤,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없는 깜깜한 밤, 으슥한 숲길에 조용히 서 있는 차,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잠시 멈춰봤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전에 들었던 범죄 얘기가 떠오른다. 캐시는 결정한다. 그냥 지나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비극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만약 자신이 차에서 내려 살펴봤다면, 하다못해 집에 와서 경찰에 연락이라도 했다면, 제인은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그녀는 자책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심해져가는 건망증과 맞물려 그녀를 서서히 망가뜨린다. 분명히 누군가 집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두 눈으로 직접 봤지만, 다른 사람이 왔을 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자신은 약속을 한 적도 없고 주문한 적도 없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결국 캐시는 자신을 믿을 수 없을 지경에 처한다. 소설은 그녀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러면서 자세히 보여주었다. 거의 후반까지, 그녀가 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건 해결이 너무 우연에 기댄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논리적으로 추론을 거듭해 범인의 계획에 있는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 여기서는 타인의 우연한 도움으로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게 된다. 이건 제인의 사건과 대비를 이룬다. 물론 캐시가 그날 밤 차에서 내려 다가갔다고 해서, 제인이 죽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쩌면 캐시마저 살해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캐시는 선의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작 자신은 제인에게 그런 도움을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건 뭐랄까, 캐시에게 죄책감을 더 갖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사건이 다 해결된 뒤에도, 캐시의 남은 삶에는 제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것 같다.



  책 뒤표지에 보면, ‘가스라이팅Gaslighting 심리 스릴러’라고 적혀 있다. 이 문구를 적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라이팅이 대개 이루어지는 관계를 생각해보면, 캐시를 위협하는 범인의 정체가 너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폴라 호킨스’의 소설 ‘걸 온 더 트레인 The Girl on the Train, 2015’가 떠올랐다. 두 작품 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비슷했다. 그건 어쩌면 요즘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감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까? 그건 타인의 감정을 착취해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세상은 약한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야하는 모양이다. 비록 모두가 다 그런 도움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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