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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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금속활자의 발명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력이 약한 탓에 인정을 못받고 있다는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세계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최초라고 인정하는 중에서도 우리끼리만 다른 주장을 하는 현실이 씁쓸했었는데, 놀랍게도 책의 서문에 이 말을 뒤집을만한 내용이 나온다. 그것은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2005년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기술은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사절단이 얻어온 기술'이며 '한국의 디지털 혁명은 인쇄술 이후 두 번째로 세계의 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말했다는 기사이다.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던 이 내용은 연합뉴스에서 발췌한 기사로 소개된다. 구텐베르크의 기술이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술이 전파된 결과물이었다니, 인쇄술이 인류에 끼친 공헌을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내용에 살을 덧붙여 소설로 쓰여진 것이 '구텐베르크의 조선'이라는 결과물이다. 석주원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장영실의 제자였던 것으로 설정하고, 그가 명나라와 사마르칸트를 거쳐 독일의 마인츠에 당도하여 구텐베르크를 만나 그 휘하의 인쇄소를 맡아 운영하는 모든 과정이 그려져 있다. 성서 인쇄 사업을 맡기 위한 경쟁자와의 암투와 인쇄기술의 개선과 새로운 기법을 위해 노력하던 세세한 부분은 소설의 재미를 더하며, 당시 오스만투르크가 세력을 확장시키던 역사적 배경을 깔고 펼쳐진다. 따라서, 인쇄기술이나 서양의 역사에 대한 부수적인 지식도 얻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소설의 초반에 든 감정은 백성들에게 글자가 전파되는 것을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여 막으려 했던 조선의 사대부 계층에 대한 미움이었다. 석주원이 먼 길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가지 않고 국내에서 인쇄술의 발전을 위해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다.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들을 움켜쥔 채, 나라의 발전에 관한 거시적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지 못한 사례는 비단 조선의 문제만이 아니기에 씁쓸해진다. 이런 점은 소설의 배경이 조선이 아닌, 문예부흥기를 거치는 이탈리아에서 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다.

가끔 소설 속으로 몰입되지 않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조금 더 완벽한 내용으로 전개되었다면, 비록 허구라 할지라도 자랑스런 인쇄술을 지닌 후손으로서 현실 못지 않은 감동과 자긍심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사건의 재현과 묘사가 이어지는 부분도 많아, 실제 사건에 초점을 맞춰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엿보였다. 책을 읽으며 끌어당겼다 살짝 밀어냈다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할까? 완벽한 몰입은 아니었지만 소설을 넘어서서 인쇄술의 역사와 지식을 알려준 부분도 컸다고 생각된다. 책 뒤편의 정성스런 사진들은 인쇄술 발달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출판사의 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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