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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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무척이나 끌렸던 책.
이름부터가 책도둑이라니!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주인공이겠다는 것에서 오는 동질감이 있었고, 파란색, 빨간색으로 구성된 두 권의 표지가 너무도 산뜻했다. 책을 먼저 읽은 건 중 1짜리 딸아이였는데, 두 권의 책을 하루에 다 읽어버리고는 말했다.
"이 책이 해리 포터보다 위야."
아이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해리 포터보다 더 좋은 책을 이미 예전에 접했겠지만, 그래도 무엇인가의 팬이라는 입장은 해리포터의 자리를 다른 책에게 내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그러던 아이가 기어코 꼬리를 내리는 걸 보고 뭔가 매력이 가득한 책일 것이란 추측을 했다.

이 책의 화자는 죽음의 신이다. 생명이 마감되는 사람들의 영혼을 데리고 하늘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어야 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2차세계대전 중인 세상에서 죽음의 신이 할 일의 양은 매우 많다. 죽음의 신은 기차 안에서 죽은 어린 소년의 영혼을 데리러 갔다가 소년의 누나가 책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이후로 소년의 누나인 아홉 살 소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소녀의 이름은 리젤.
이후로 죽음의 신은 리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아왔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마커스 주삭의 책은 특별하다. 이따금씩 나오는 짤막짤막한 문장과 독특한 비유법들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게다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고하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책이 비중있는 등장인물의 죽음과 같은 큰 사건을 독자들이 사전에 알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하는 반면에, <책도둑>은 화자인 죽음의 신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와중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진다. 그 바람에 레몬머리의 의협심 가득한 소년 루디의 죽음을 1권도 채 읽기 전에 알게 되었고 2권의 후반부에야 나오는 죽음에 맞닥뜨릴 때까지, 루디가 등장할 때마다 아련한 감정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시도는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의 또하나의 미덕.
바로 성장소설이라는 점이다. 리젤은 9살에서 14살 소녀가 되기까지 전쟁통과 나치 치하의 핍박한 환경을 책과 우정, 가족애로 이겨낸다. 리젤과 루디의 학교생활은 그또래의 아이들이 겪는 여러 감정들과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어 힘겹게 성장의 관문을 통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껍질을 깨는 아픔에 비견되는 10대의 성장은 엇자랄 듯 아슬아슬하다가도 곧게 바로잡히며 뻗어나가고, 나는 내 일인양 안심하며 박수를 보낸다.

리젤은 책이 주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말과 글, 그것이 의미하는 내용까지.
리젤의 집 지하실에 숨어 살던 유대인 청년 막스가 잡지에 페인트를 칠해 만들어준 책은 리젤과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해주었다. 마을의 대피소에서 불안해하며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리젤의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쟁의 공포를 잊으려 노력했었고, 평소 리젤이 책을 훔치도록 방조하던 시장 부인은 책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던 리젤에게 이젠 직접 써보라며 검은 표지의 노트를 선물했다. 책으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던 리젤의 방식이었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잔잔한 휴머니즘은 피어난다. <책도둑>의 가치는 바로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작은 도시 몰힝에서 펼쳐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혈연관계도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관계로 발전되어가던 모습.
그 면면의 페이지마다 한켠에서 얌전히 리젤의 사랑을 받던 책들.
이런 유형, 무형의 이미지들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책 <책도둑>을 하나로 설명하기란 힘이 들지만, 가슴에 솜같은 덩어리 하나 파고 들어 안긴 것처럼 따뜻해지는 것이 <책도둑>의 영향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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