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 한장
오래된 사진첩을 정리하다 바닥에 툭 떨어진 내 어릴 적 가족사진 한 장!
촌스런 옷차림의 다소 낯선 사람들이 흑백의 모습으로 어색하지만 진지한 포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진을 아무 때나 내 맘대로 찍어 댈 수 있는 요즘과 달리 큰 맘먹고 사진관에나 가야 찍을 수 있었던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보고 또 본다.
셀카
요새 셀카봉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셀카를 보다 더 자유롭고 편하게 찍기 위해 나온 이 물건을 보면서 그 우스꽝스러움에 웃음이 나기도 하거니와 그렇게까지 하면서 셀카를 찍어대는 이유를 나름 생각해본다.
원래 셀카의 존재론적 기원은 나를 찍어 줄 사람의 부재다. 낯선 타인에게 부탁하느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찍겠다는 것인데 인간소외와 대화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던 셀카가 진화하여 인터넷과 결합한 하나의 문화 및 유행이 되었고 자신이 존재함을 타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셀카의 또 다른 이유는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곳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현재의 즐거움을 미래의 내가 원하는 시점에 다시 원상대로 복원하고 픈 마음이 아닐까? 육안으로 미처 담지 못한 것을 정지된 영상의 파일 속에 가둬놓고 영원히 그 기억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내 머리 속에 찍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희미해질 기억속의 추억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먼지 하나까지도 선명하게 재현해줄 디지털 매체에 자신의 현재를 저장 해놓아야만 안심이 되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도 엿볼 수 있다.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지만 그렇게 해줄 타인이 부재한 소외의 시대, 나라도 나를 보듬어야 하는 가엾은 나.
다시 빛바랜 사진 한 장의 추억
미래에 볼 자신의 과거를 위해 현재 열심히 셀카를 누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나중에 볼 추억의 그림들은 담아 둘 머리 대신 하드디스크에 겹겹이 쌓인 채 주인이 다시 꺼내보길 기다리지만 기약 없이 갇혀 있다 어느 날 힘없이 포맷돼 버릴 수 있다.
과거 아날로그 사진 한 장은 한 시공간과 다른 시공간 사이의 압축이다. 비록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이지만 거기에는 길고도 복잡한 사연들이 담겨 있기에 디지털이 제공할 수 없는 절실함이 함축되어 있다. 손가락 하나로 운명이 결정되는 디지털사진에 비해 현상된 사진은 기억에서 지원 버려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태워버리거나 잘라버리는 숭고한 의식을 치르고서야 없앨 수 있다. 기억과 사진이 일대일 대응인 것이다.
수백기가의 하드에 저장해놓은 수천개의 파일보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추억이 결코 양과 해상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 띄엄띄엄 이어지는 아스라한 기억 조각들의 매듭이기 때문이다. 미처 사진 안에 다 포함되지 못하고 밀려난 나머지 기억들의 아쉬움이 사진을 볼 때마다 다시 결합되어 추억을 완성시켜주는 것이다.
흐릿한 사진으로 기억을 더듬는 것은 내맘대로 편집이며 즐거운 조작도 가능하다.
그러기 싫다면 과거는 과거대로 물 흐르듯이 흘려보낼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