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인문학의 소외다.
과거 천 년 동안 인문학이 인류의 지성사를 빛낸 주인공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이나 시민이라 일컫는 지적, 경제적으로
균등한 계층이 탄생하기 전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하층민으로 구성되어 평생 농사를 짓거나
가축이나 키우던
시대에 일반 백성이나 노예들에게 사실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지금에야 인류의 자산이라 평가하지만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대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쌀 한 톨만큼의 가치도
의미도 없는 무용한 것들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지적 사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사유의 자유와 사유할 여유와 필요한 정보가 무한대로 제공되는
인류지성사의 황금기요
가장 보편적인 대중의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NASA가 아폴로를 달에 보낼 때 궤도를 계산했던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컴퓨터를
우리는 날마다 장난감처럼 들고 다닌다.
그렇지만 이 놀라운 기적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존재의 가치나 삶의 도덕을 사유하던 인문학이
만나고 있는 현대의 과학기술은 그 규모나 가짓수에서
가늠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전통적인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경계를 나누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과학은 분화되어 연구되고 발전하고 있다.
과학자는 자기의 연구에 대한 과학적 가치나 명성에 대해서만 열중할 뿐,
사회적 파급효과나 대중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성찰이나 자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며
정치가나 기업가 또한 과학기술의 경제적 기대 효과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과학에 밀려 철 지난 소리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진정 철학이 필요한 시대며 인문학이 부흥할 수 있는 기회다.
인문학은 삶의 학문이다.
현대는 과학이 우리 삶이 되었기에 인문학은 과학을 논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논하기도 전에 이미 과학에 함몰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지금 과학의 고삐를 잡지 못한다면
과학은 통제 불능의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과학자에게 정치가에게 기업가에게만 고삐를 맡겨서는 안된다.
우리의 지분을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문학도에게 과학은 거대한 철의 장막이다.
음식점에서 메뉴를 골라야 하는데
정작 메뉴판은 알아먹을 수 없는 외국어로 되어 있기에
음식을 주문할 수 없어 난감해하는 여행자의 꼴이다.
그래서 앞으로 인문학도는 철학을 위해
구글번역기라도 돌려서 메뉴를 기어이 읽고
주문하여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고독하고 힘든 여행이 될 수밖에 없지만
먹고 살려면 악착같이 따라가야 한다.
과학자, 정치가, 기업가가 그냥 알아서 주문해 준 음식을
편하고 맛있다고 그 음식이 뭐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가격이 책정되었는지도
묻지 않고 덥석 먹기만 한다면 올바른 소비자의 자세가 아니겠다.
재료를 알아보고 원가를 계산해 보고 위생을 따져 물어보려면
최소한 그 음식이 뭔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