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권력이 있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었다. 권력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능력과 자질에 따른 우열은 피할 수 없었고 둘 중 하나는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힘이 세고 몸도 날렵해 사냥을 잘하는 한 사람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뒤쳐진 나머지 한 사람은 살기 위해 그에게 달라붙어 아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고기 한 덩어리라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여러 명이 모이자 사냥을 잘 했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우두머리가 되었고 자신의 말 한마디에 나머지 사람들이 따르는 재미에 자신의 힘을 지속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원시공동체를 벗어나 왕이라는 제도화된 권력이 탄생했고 권력을 보호해줄 힘이 필요했다. 합법적인 폭력기구의 탄생이다. 왕은 백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최대한 세금을 걷은 대신 국민의 반발이 없는 한 가장 적은 양만 나누어 줬다. 반항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백성들은 목구멍에 넘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보장된다면 ‘국가의 보호’ 아래 그렇게 살았다. 아사 직전에만 가끔 반항했으나 왕이 조금 더 양보하면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어는 순간 똑똑한 국민들이 생겨나 왕의 권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국민은 봉기를 일으켰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왕은 국민의 뜻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양도된 권력은 다시 소수의 특정 국민에게 돌아간다. 부르주아 권력은 왕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 간다. 대신 무소불위의 무력 대신에 ‘법’을 새로운 통치 장치로 내세운다. 더 이상 무자비한 힘으로는 똑똑해진 국민들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공정한 판단을 전제로 한 법은 날 것의 폭력을 대신해 합법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홉스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국가와 계약을 맺었다며 기를 쓰고 명분을 만들어 준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세금을 거두고 국민은 국가의 보호로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보장받았다고 말이다.

 

하늘이 내려준 권력을 보호했던 창과 칼은 이제 법이라는 고급진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법은 결코 국민의 편이 아니었다. 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도구였다. 오히려 정당성이라는 명분을 얻은 법은 실행도구로서 경찰을 내세우며 합법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국가에 권력을 양도한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에 봉사하기로 한 법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어떠한 일도 법의 테두리에 집에 넣으면 해결되었다. 어차피 법을 만든 사람도, 적용하는 사람도, 집행하는 사람도 모두 권력자거나 한패였다.

 

국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자신의 권력을 회수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좌절된다. 법은 철저히 권력의 편이었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

권력의 이익에 맞게 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

입법부와 사법부를 거느리며 권력자의 마음대로 국가를 경영하는 행정기관.

법의 모순을 깨달은 국민이 스스로 권리를 지키고자 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법 뿐.

그러나 이미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법은 결코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집나간 자식일 뿐.

이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만든 합법을 벗어나 불법으로 행동하는 것 뿐.

스스로 만든 합법을 버리고 불법으로 행동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를 되찾는 방법이 되어버린 지독한 아이러니 앞에 멍하니 서있는 국민들.

 

권력은 결코 자신의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속살이 드러나면  권력의 끝을 봤다는 것일 수 있다.

권력의 민낯을 본 순간 날카로운 칼날에 베일 각오를 해야 한다.

쉽게 볼 수 없는, 우리가 양도한 권력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