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다. 사흘 연휴라 기분이 들뜬다. 다들 일찍 집에 가는 분위기라 총총 퇴근했다. 저녁이 어중간 해 아이들은 대충 먹을 것을 시켜주고 와이프와 술 한 잔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 술을 즐겨하진 않지만 가끔 와이프가 눈짓을 보낼 때면 마지못해 나서곤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공간과 왁자지껄한 소란 사이로 끼어 들 때 면 나 자신이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무슨 사람들이 이리 많을까?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을까? 쉴 새 없어 떠들고, 웃고, 마시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짠한 생각도 든다. 다들 먹고 사느라 힘들었겠지. 저렇게 먹고 마시며 일상의 자질구레한 노곤함을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힘든 곳이 되겠지.
메뉴를 훑어보니 생각보다 먹고 싶은 안주거리가 많다. 시원한 어묵탕과 달짝지근한 코다리찜을 놓고 와이프와 긴 줄다리기를 했다. 난 무조건 다 시키자 주의다. 남으면 말고다. 언제 이 식당에서 이 메뉴를 다시 먹을지 기약할 수 없는데 뭘 고민하겠는가? 그냥 땡기는 대로 시키면 되지. 하지만 알뜰한 아내는 이리 재고 저리 잰다. 배불러 다 못 먹는단다. 주문했다 취소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코다리 찜에 밥 한 공기 시키는 걸로 낙찰을 봤다.
와이프의 술잔을 가득 채우고 가볍게 건배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분위기에 동화되지 않는다. 와이프는 앞에서 재잘재잘 뭐라고 부지런히 입을 놀리지만 주위의 소음과 겹쳐 제대로 들리질 않는다. 난 그냥 고개만 끄덕 끄덕 부지런히 듣는 시늉만 하다가 가끔 들리는 단어에 반응을 해준다.
“원장이 왕 짜증이야....” “저런, 그 인간은 왜 자넬 못살게 굴지?”
“옆 반 선생이 좀 이상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래”
유치원에서 임시직으로 교사를 하고 있는 아내다.
평소 자주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조합하면 아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안다. 맨날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까.
분위기에 좀처럼 동화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는 내게 저녁 겸 안주로 시킨 코다리 찜이 유일한 위안이 된다. 청양고추와 양념을 듬뿍 뒤집어 쓴 모양이 제법 식욕을 돋운다.
부산한 젓가락질 사이로 틈틈이 아내와 건배하는데 옆 테이블에 않은 젊은 처자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흘낏 몇 번 곁눈질 해 본다. 역시 젊음이 좋다. 우리 만 빼고 대부분 젊은 청춘들이다. 돈은 부모가 벌고 쓰기는 자식들이 쓴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다만 가격이 저렴한 곳이라 위안이 된다.
소주 한 병과 코다리, 공기 한 그릇과 그 외 기본안주의 무한리필로 우리의 술자리는 성황리에 끝났다. 차를 가지고 온지라 거의 혼자 다 마신 소주 한 병으로 기분이 한껏 달아 오른 아내는 혼자 콧노래와 콧소리를 번갈아 구사하며 저 혼자 깡충 깡충 뛰어 다닌다.
간단한 술자리에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어 대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가볍고 젊잖게 일갈한다. “집에 가서 주정하지 마라”
그날 저녁 아내는 새벽까지 소파에서 코 골며 잤다. 난 침대에서 편하게 혼자 잤다.
2015.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