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들과 거실에서 영화를 봤다.

 

이미 수년 전에 봤지만 아들을 위해 다시 봤다. 이럴 수가? 그때도 감동적으로 봤건만 심지어 줄거리마저 생각이 나질 않는 게 아닌가? 좋은 책이나 영화를 왜 다시 봐야 하는지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컨택트(contact). 외계생명탐사프로젝트인 SETI를 이끌었던 세계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과학자인 칼 세이건 박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한 과학자가 주변의 비웃음을 물리치고 외계생명체와 교신하여 그들이 보내준 자료로 우주선을 만들고 방문하여 만난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현재 가장 빠른 속도인 광속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수억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고려한다면 이 우주상에 설사 우리 외에 생명체가 있다 하더라도 교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우주에 전파를 보낸 후 그들이 받을 즈음 우리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며 그들 이 보낸 전파가 아무도 없는 지구에 도착할 무렵 그들 역시 멸종된 후일 것이니까.

 

이런 현실적인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저 광대무변한 우주를 상대로 벌이는 한 인간의 고독한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는 숭고함과 장엄함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한 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주인공 앨리 박사(조디 포스터 분)는 마치 궁극적 원리나 세상의 본질을 찾는 것처럼 몰두한다. 그래서 혹자는 영화 속 외계인을 만나는 과정을 신을 만나는 영적 체험이나 명상의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종교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곳곳에 우주를 배경으로 신비스러운 기운이 흐름에도 과학자인 앨리는 초지일관 단호하게 신을 부정한다. 우주선을 타고 외계인을 만날 일생일대의 기회를 신을 부정함으로서 놓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은 과학이 결코 신과 양립할 수 없다는 칼 세이건 박사의 과학적 소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영적인 신비함이 아닌 과학적 신비함이랄까?

 

우리 평생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을 외계인과의 조우를 영상으로 보는 느낌은 색다르다.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은 앨리에게 만남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쥐어 주지 않는다. 그렇게 만나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나 또 만나자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긴 채.

 

지구로 돌아온 앨리가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일까? 외계생명체가 우리 인간에게 남겨준 메시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뭔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 인간의 노력을 한낱 인연의 한가닥으로 마무리하는 그들의 존재는 아무리 봐도 과학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결국, 수십억년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우주와 인간과 또 다른 생명체와의 찰라의 만남과 기나긴 기다림의 약속으로 끝나는 인연의 삼각고리는 그대로 아름답고 장엄한 우주의 대서사시오 묵시록이다. 엔딩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내내 황홀하고도 헛헛한 느낌에 가슴이 진동한다.

 

추신 : 아들 왈, 오늘 영화는 왠지 머리가 복잡해.....성공이다. 저 무딘 놈의 가슴에 뭔가가 꽂힌 것이다. 오늘 영화는 일단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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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2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과 정말 좋은 영화 보셨습니다.
저도 예전 칼 세이건 원작이란 것도 모르고 봤는데, 님글 보니 다시 보고 싶습니다. ^^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11-24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건 한참있다 다시 봤을때도 여전히 좋은것을 말하죠 시간은 예전에 보지 못한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마법을 부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