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취미 - 취미가 인생을 바꾼 남자들의 이야기
남우선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사는 동안 여기 저기 자신의 이력을 써넣을 일이 있을 경우 빠지지 않고 꼭 기재하는 난이 있었으니 취미다. 그러나 이제 겨우 먹고 살 걱정을 덜어가던 시절, 어른도 아닌 아이가 무슨 취미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빼놓고 갈 수는 없으니 이리저리 눈치보다 적어 넣는 것이 무난한 독서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영화감상, 음악감상, 여행, 스포츠 중 한 두 개다. 그나마 진짜 취미에 가장 근접한 것이 수집 분야였는데 품목은 대부분 우표였다.

 

지금은 모두 흔해빠진 것들이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감상할 만한 영화관도 멀고, 관람료도 비싸고, 상영작의 종류나 가짓수도 적었다. 음악을 감상할 오디오는 고사하고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요새 아이들은 본적도 없는- 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잘해야 라디오로 감상할 수밖에 없다.

 

여행은 여름 피서 철이나 가을 단풍철에 잘하면 시외버스 타고 한 두 번 갈 수 밖에 없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먹을 거 한보따리 짊어지고 놀러 한 번 갈려면 그 자체가 대장정이다.

 

스포츠는 그야말로 무늬뿐이다. 프로 스포츠가 아예 없었거나 생긴 지 얼마 안 되거나 했던 시절이니 비싼 스포츠용품을 구입할 수도 없었고, 있다 한들 할 만한 곳도 없었다. 하다못해 지금은 한 집 건너 있는 태권도장이나 헬스클럽이 한동네에 한두 개 있거나 없거나 했으니까.

 

독서 역시 별반 차이가 없으나 그래도 제일 나았다. 형편이 그다지 안 좋은 집도 세계명작시리즈나 소설책 몇 권 정도는 굴러다녔으며 운이 좋으면 만화책도 있었다. 이중 그나마 취미라고 내세우기 제일 무난한 것이 독서였다. 그래서 늘 취미 란을 채울 땐 독서라고 썼다. 독서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알기도 전 부터 말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돈이 없어 취미를 못한다는 말이 궁색하게 들린다. 이제 취미는 단순히 내가 좋아서 하는 어떠어떠한 것을 넘어섰다. 지금의 취미는 자기계발의 하나요, 자아성취의 과정이요, 인맥관리의 차원이자, 어쩌면 나라는 인간을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아직도 난 그 옛날의 나와 별 차이가 없다.

여전히 내 취미는 영화감상이다. 그러나 주말에 다운받아 본다.

여전히 내 취미는 여행이다. 그러나 또 주말에 어디 한 번 갔다 온다.

여전히 내 취미는 음악감상이다. 그러나 운전 중에 듣는 노래 몇 곡이 전부다.

여전히 내 취미는 독서다. 독서는 옛날에도 취미냐 아니냐로 논란이 있었는데 어쨌든 그 중 제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취미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취미는 장황하게 나열한 이런 종류의 취미가 아닌‘진짜’취미다. 밥은 굶어도 개인 감상실까지 만든 오디오 마니아 시인 김갑수는 음악감상의 최고 단계며, 남의 구두를 손에 감싸않으며 사랑을 나누는 이상한 김보한씨는 우표수집의 최고 단계며, 남자취미호감도그래프의 품위와 간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요트를 시작으로 패러글라이딩, 프리다이빙, 스킨스쿠버 다 스포츠의 최고 단계다. 할리 데이비슨을 끌며 남자의 야성미를 풀풀 풀기는 배우 최민수는 정말 간지난다.

 

당초 이 책을 본 이유는 혹시 동하는 취미가 있을까 해서다. 평생 취미다운 취미 한 번 즐기지 못하고 보내버린 지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의 자기 컨트롤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자기계발기법으로 자리 잡은 지 꽤 되었건만 난 여전히 집에 오면 할 일이 없어 책을 보며 주말에도 딱히 즐길만한 것이 없어 신세를 한탄하며 또 책을 집어 든다.

 

이제 취미는 더 이상 시간 때우기 용의 잡다한 짓도 아니요, 부자의 돈 자랑도 아니며 특이한 몇 사람의 구강기나 항문기로의 퇴행도 아니다. 먹고 사느라 혹사한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요 위로며, 타인과 다른 나만의 존재양식을 규정해주는 경계며, 먹고 사는 기본욕구만 충족되면 당연히 찾았던‘놀이하는 인간’으로의 복귀이자 인간을‘일하는 기계’로 전락시켰던 자본주의의 음험한 모략에서 벗어나는 인간성의 회복인 것이다.

 

노는 인간을 게으른 자로 분류하고 노는 것을 죄악시하며 일하는 것을 신에 대한 소명으로까지 격상시킨 자본주의의 지령을 극복하지 못한 이 땅의 불쌍한‘개미’들이 좀 논다 한 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좀 과하게 즐긴다 한 들 무엇이 대수겠는가?

 

취미는 노는 것이다. 그냥 노는 것이 아니고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노는 것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다. 노는 것은 인간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누가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놀아야 한다고 말하면 뺨을 쳐라. 노는 것은 노는 것일 뿐, 그 어떤 것에 대한 목적과 이유가 아니다. 그건 노는 것이 아니다. 쉬는‘’인 것이다.

 

김정운 교수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즐거우면 불안해지고, 재미있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이 땅의 사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 맞는 것 같다.

당장 그렇게 못 놀더라도 노는 사람끼리 낄낄거리며 노는 즐거움의 비밀을 대놓고 당당하게 공유하자. 그것이 우리가 누려야 할 당연한 삶이다.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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