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하면 보인다
신기율 지음, 전동화 그림 / 쌤앤파커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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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간코너에 있던 이 책을 난 제목처럼 직관적으로 골랐다. 제목만 보고 요새 유행하는 흔해 빠진 경영이나 처세술 책처럼 보여 지나가려다가 목차를 보고 마음을 고쳐 잡은 책.

 

뭔가 삶과 운명이 교차하는 신비스럽고도 묘한 느낌.

 

내 직감은 맞았다. ‘도시수행가’, ‘직관의 철학자’라는 수수께끼 같은 프로필의 작가의 정체만큼이나 묘한 책이다. 무엇을 말하는지 가슴으로는 알겠는데 머리로는 받아들이기가 낯설다. 어려운 이야기도 아닌데 뜬 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느낌은 찐하다.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힐링에세이라고 해야 될까? 처음 상반부는 사회비평처럼 들렸고 중반을 넘어갈 땐 심령학이나 초월명상, 단학같은 냄새가 나다가 마지막에는 운명학처럼 보였고,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며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기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까닭모를 슬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뭔가 알 수 없는 묵직한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새삼스럽게 내 삶에 얹혀 있는 운명의 한 자락을 어루만지는 알 수 없는 따스한 손길의 쓰다듬을 느꼈다.

내용과 상관없이 마음에 와 닿는 이 느낌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책의 무엇인가가 내 마음 밑바닥에 숨어 있는 묵은 감정의 가닥들을 건들이고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나 혼자만의 동떨어진 외로운 개체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며 내 마음을 열고 세상의 주파수와 맞추고 공감하며 떨림에 공명하는 존재. 이 세상과 수많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에서 떨어져 나왔기에 우리 모두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연결된 존재며 문명과 함께 잠시 잊고 있기에 떨어져 있을 뿐, 언제라도 다시 연결될 수 있다.

그 옛날 자연과 교감하고 생명과 감응하는 삶을 다시 복원하자는 이야기다. 우주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 모두는 거대한 동일체며 함께 존재의 목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인 것이다.

 

이른바 동양의 천인감응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 양자역학에서도 만물은 서로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의 광양자를 두 개의 입자로 나누어 멀리 떨구어 놓아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은 과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신기한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말을 가끔씩 이런저런 과학에 같다 붙이지만 삶에 대한 성찰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사족이라 생각한다. 서로 교감하며 고통은 나누고 행복은 함께 하자는 당연한 말을 과학적으로 논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우주 삼라만상이 결코 따로 떨어진 개별체의 단순한 총합이 아닌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의 가족이 아프면 쓰다듬어 주고 나의 친구가 괴로워하면 같이 술 먹어 주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힘든 일을 당한 걸 보면 가슴이 아프고......이미 우린 그렇게 서로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는 연결된 존재들인 것이다.

 

다만, 이렇게 살아도 좋지만 내 주위만 생각하지 말고 크게, 더 크게, 어마어마하게 크게 이 우주를 향해 그동안 닫혔던 가슴을 활짝 열어 제치고 놓치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공동체적 삶을 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일 것이다.

 

몸의 상처는 ‘후시딘’으로 치료되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럴 수 없다. 어떤 약을 발라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치료가 언제 될지 모른 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불치병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상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같이 호~~해주고 쓰다듬어 준다면 생각보다 일찍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면 참 좋지 않겠는가?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붕대로 감아버리면 안에서 곪아 터진다. 진정한 힐링은 상처를 덮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늘 상처를 보고 관심을 가지고 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 나아 있을 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그렇지만 보이지 않은 끈에 연결된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말이다.

 

책도 결국 독자와의 궁합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비과학적인 명상에세이일 수도도 있고 시답잖은 잡서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지도가 될 수 있다. 내게 이 책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상처를 다시 한 번 꺼내 보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니 그것 한가지만으로도 책값은 한 것 같다.

 

참 이상한 책이다. 글을 쓰면서도 뭔가 횡설수설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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