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경험인 시대가 있었다. 농사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에 1년 농사경험은 1년의 나이와 같았다. 제아무리 똑똑한 들 1년에 2번의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으니, 남보다 경험을 앞지르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농업이 전부인 시대였으니 당연히 삶의 테두리는 농업을 벗어나지 못했고, 삶의 지식은 농업 기술이었다. 지식은 경험이요 농사를 잘 짓는 법인 것이다. 수십년의 농사경험이 있던 노인들은 그만큼의 경험이 자산이었고 젊은이들은 그러한 노인들의 나이와 경험을 지혜와 동일시하며 공경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이는 육체적 노화의 다른 이름일 뿐,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더 이상 농사짓는 법, 천기를 헤아리는 방법이 지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자본주의 시대의 지식은 돈 버는 법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되고 일한 대가의 기준은 기간과 경험이 아닌 이익창출기여도다.
사회가 원하는 지식의 유통기간이 끝난 노인의 지난 경험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에 얼마나 공헌을 많이 하고 있는 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신세한탄이 아니다. 이 시대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존재다.
그래서 현대에 지혜로운 자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교묘하게 절충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이 요구하는 일방적인 노동의 강도와 개인이 원하는 휴식의 희망을 충돌시키지 않으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의 유통기간을 주기적으로 연장할 수 있어야 하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시대의 흐름을 잠시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자본의 요구에 봉사하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때가 닥치면 사라져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말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사회에 효용가치가 없을 때 우리는 생을 마감해야 한다. 충전이 안 되는 일회용 건전지의 신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