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심리학 - 누가 권력을 쥐고, 권력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가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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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퇴근하다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공고문을 보게 된다.

입주자 대표와 각 동 대표를 뽑는 선거 공고다.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동안 힐끗 한 번 보고 잊어 버렸다.

 

얼마 뒤 다시 공고가 붙었다.

입후보자의 경력이나 출마의 변을 써 놓았다.

후보자의 수는 많지 않았다. 대개 한두 명이다.

경쟁이 그다지 치열한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경력에 특별한 점은 없어 보인다.

전기기술자, 보험설계사, 회사원, 건축가, 사업가 등 평범하다.

심지어(?) 고졸도 보인다. 이런 일에 반드시 대졸 학력이 

필요하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1,200세대가 넘는 이 거대한 아파트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학을 나온 사람이어야 한다는 편견 가득한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다시 얼마 후 당선 공고가 뜬다. 그 사람들이 그대로 당선되었다.

전직 사업가가 입주자 대표가 되었다.

난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관심도 없었으니 투표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입주자가 투표를 하는 직접 선거인지 아니면 동 대표를 먼저 뽑고

그들 중 입주자대표를 호선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날 그들은 나와 입주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실거래가로 약 7,000억의 자산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매달 약 5억원에 달하는 관리비를 5,000여명의 입주자가 납부하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를 통제하고 각종 자치 규약을 만들며,

시설 가치와 입주자의 복지 수준을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주요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앉게 된다.

단지 그들이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아파트 거주자 중에는 아파트 관리에 필요한

행정, 회계, 법률 전문가도 있을 것이고

건물 관리에 필수적인 건축, 전기 설비 전문가도 많을 것이고

교수, 박사, 회사 간부 아니 전직 대기업 CEO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결과는 이러한 전문가들과 전혀 경쟁하지 않은

입주자 중 단 1%에 불과한 소수의 무리가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이 그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아파트 거주자와 다른 점은 딱 하나

아파트 입주자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마음과

그 마음을 현실에 구현하겠다는 강한 실천 의지다.

당연히 지금은 그들의 마음과 의지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과연 그들이 순수한 봉사 정신 만으로 나왔을까?

그렇다면 아파트마다 왜 그리 시끄러운 일이 많을까?

입주자 대표하고 누구하고 싸움이 붙어서 서로 고소하고 난리라더라.

누구는 업자한테 돈 먹고 사업을 줬다더라...등등

 

물론 지금은 과거에 비해 아파트 관리가 많이 개선되었다.

아파트 자치규약과 회계 준칙에 따라 각종 사업에

공개입찰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중요한 결정은 입주자 총회 같은 데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그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주민의 절대 다수가

그들이 뭘 하고 뭘 결정하는지 관심이 없는 현실에서

밀실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찌 알 것이며

그들의 청렴과 결백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공고문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잘 뽑아야 하는데.....내가 하면 잘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난 먹고 살기 바쁘고, 감투에는 관심도 없고, 또 귀찮기도 하고

나 아니어도 할 사람 많은데 굳이 내가 나설 이유도 없고,

또 괜히 하다가 이상한 사람들 만나면 성가신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고.....

 

그렇게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다수의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 나보다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아주 쉽게 내어 주고 만다.

 

그리고 이 상황은 동문회, 산악회, 동호회 등 큰 이권이 없는 사적 모임부터

마을 공동체, 직장, 정치 단체, 국가 기관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규모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권력은 늘 탐한 자에게만 돌아가고 그들은 우리의 무관심을 발판 삼아

별다른 경쟁 없이 조직의 장이 되어 시스템을 장악하고 오염시키며

부정부패를 일삼고 아랫사람을 마음껏 지배한다.

 

결국 그들의 정체를 한참 뒤늦게서야 알게 된 우리는

그들을 욕하며 끌어 내리려 하지만 이미 공고하게 자리를 잡은 그들은

그 자리에 올라간 것처럼 쉽게 내려 오지 않는다.

 

온갖 희생을 치르고서야 겨우 바로 잡았지만 다시 과거를 되풀이한다.

개혁을 부르짖고 나온 후보가 다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걸

수없이 반복해서 보게 된다. 역사는 늘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첫째, 더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는가?

둘째, 권력은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가?

셋째, 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통제하도록 놔두는가?

넷째,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대충 답은 이러하다.

 

첫째, 부패하는 사람들은 권력에 더 이끌린다.

이들은 대개 권력을 얻는데 더 능하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는 마키아벨리즘

세상을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즘

타인을 자신의 목적에 대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

 

지도자로서 가장 적합하지 않은 이러한 세 종류의 사람들이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실제로 성취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별로 갖고 있지 않은

이러한 특성들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겉으로 보기엔

오히려 더 진취적이고 능력이 있어 보이고

심지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 권력자는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흔히 하는 말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권력은 심지어 사람 내부의 화학적 분비까지 바꾼다고 한다.

개혁을 부르짖었던 사람이 자리에 앉은 뒤 독재자로 변질된 수많은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유명한 말은

상당 부분 진실이다.

 

여기에 나쁜 시스템은 날개를 달아 준다. 심지어 좋은 시스템도 망쳐 놓기 일쑤다나쁜 지도자를 법과 제도로 제어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역시 수많은 사례가 알려 주고 있다.


셋째, 우리는 석기시대적 뇌와 관련된 비이성적 이유로 이들에게 끌린다.

사냥을 잘해서 우리를 배불리 먹게 해줄 것 같은 사람

싸움을 잘해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현대로 바꾸면 잘생긴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

쇼맨십이 탁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도자를 뽑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나 짝을 선택하는 것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이성과 지성으로 세밀하게 따지는 대신 그럴싸한 이미지의 

포장에 잘 넘어간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막상 손은 비이성적 호감도에 현혹되곤 한다.

 

넷째, 그러면 이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원인에 대한 분석은 명확하고 탁월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은 어렵고 모호하기 일쑤다.

사람을 속이는데 우리보다 한 수 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이코패스를 우리가 어찌 쉽게 알겠는가?

 

그렇다고 그러한 사람들이 내 삶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도록

놔두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가장 훌륭한 사람을 뽑는 시스템이 이상적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에서 그런 이상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현대 민주주의는 뽑혀서는 안 되는 최악의 사람을 최대한 거르거나

아니면 불가피하게 지도자가 되었더라도 최소한의 희생으로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향 외 더 나은 선택지가 없다는 게

한계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오랜 시간 동안 민주주의는 각종 법과 제도를 만들어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독재자들은 헌법과 삼권분립, 국민의 주권을

아주 쉽게 종이처럼 구겨 내팽개치곤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을 쫓아낸 명분도 헌법이고 국민의 주권이고 자유였다.

 

지도자가 시스템을 제멋대로 운영하고 있다면

겉모습이나 말과 상관없이 그는 이미 독재자다.

잘못된 지도자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지 감시하는 마지막 보루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뽑은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원인자 부담, 결자해지다.

 

석기시대처럼 가족 단위의 무리가 사냥과 채집으로

생을 영위하던 시대에는 지도자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집단으로 모여 살게 되었고

집단의 질서를 효율적으로 유지할 대규모의 관료조직이 필요해졌고

당연히 그 조직을 지휘할 강력한 리더의 존재가 필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작 리더가 꼭 되어야 할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정작 권력에 관심이 없고 절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들이 쉽게 권력을 얻는 아니러니는

문명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꾸준히 그리고

변함없이 존재하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다수의 착하면서 권력의지가 없는 국민은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 성패의 관건인 소수의 능력도 없고 착하지도 않으면서 권력욕만 엄청난 후보자들을 어떻게 가려내고, 솎아 내고, 이미 늦었다면 쫓아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의무를 원치 않아도 떠안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북유럽의 지방의원이 우리나라에 출장 오면서 받은 출장비를

막상 쓸 일이 없자 귀국해서 그대로 반납하는 장면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의원이 그렇게 한 것은 그 사람이 착해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도자가 법과 질서, 시스템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늘 감시하고

그래서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해 확실히 책임질 수 있도록 해서

지도자 스스로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명확하게 주지시키는 것

 

선하며 능력이 있지만 권력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지도자를 꿈꾸고 다가설 수 있는 다양한 유인책과 선출 방법을 모색하는 것

결국 늘 지배받고 있는 우리 다수의 몫이다.


우리의 희망과 선한 의도를 늘 한결같이 배신하는

소수의 그들을 우리 삶에서 제거할 수 있고 없고는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그들을 뽑고 지배를 받는 우리의 관심과 실천 외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그들은 늘 우리의 게으른 무관심의 약점을 파고 들 궁리만 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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