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의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는 사회나 공동체의 올바른 도리나 이치다.

어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기준이다.

정의는 기준으로서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 기준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게

결국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의미다.

 

흔히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한다.

그 말에는 자연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해

필연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숙명적인 권유를 깔고 있다.

다시 말해 그냥 운이니 따지지 말고 받아들여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자연이나, 세상은 공평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세상의 불공평을 일반화 합리화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렇게 대충 퉁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

 

정의가 뭐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도덕적인 답을 내놓는다.

다수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공리주의나

자유주의에 입각한 선택의 자유 같은 이야기로 정의를 논하기 보다는

공평무사해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법을 지키는 것이다.

올바른 것이다. 등 주로 도덕에 관련된 말로 정의를 대신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정의란 말 그대로 올바른 뜻이다. 도덕인 것이다.

문제는 도덕도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변하고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는 것이다.

시대는 그렇다 치고 현대의 복잡한 문제와 사건을 놓고

막상 정의로운 답을 찾을라치면 여러 답안이 나온다.

 

현재 의사들의 파업이 정의로운가?

정부의 공리주의 입장에서 소수 의사의 이익보다

다수의 국민이 더 피해를 보고 있기에

이익의 총량에서 보면 정의롭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애초에 별다른 대화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완전한 정의는 아니다.

 

자유주의 선택의 입장이라면 

의사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파업을 했기에 정의롭다.

자유로운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증원을 강요한 것은

시장주의의 입장에서 부당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파업의 가장 큰 희생자인 국민의 입장인

도덕론으로 본다면 의사가 직업인에 앞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특별한 사명을 지고 있다고 보기에 어떠한 이유로도

환자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의료인의 자세를 이유로

정의롭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의사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자동차공장에서 파업하는 건 정의롭고 

의사가 파업하는 건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

내가 하는 일이 직업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일이 되었을 뿐

자동차를 만드는 것 보더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당하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해 자신의 노력으로 의사가 되었다는

현대의 능력주의에 입각한 공정한 기회균등을 넘어서

태어난 집안과 타고난 머리, 그리고 의사가 대접 받는 시대까지도

분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롤스의 완전한 평등주의에 따른다면

의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사회에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사태의 답은 파업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

정부의 인내를 바탕으로 한 어렵고도 기나긴 대화와 설득의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의사 집단의 똑같이 어렵고도 고민스러운 협상과 타협의 노력

하지만 현실은 늘 빗나간다.

정부나 의사나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목적은 같지만

각자의 정의만 부르짖을 뿐 국민을 위한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열 명을 살릴 것인가 다섯 명을 희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공리주의식으로

해결하기는 쉽다. 다수를 택하면 된다

그러나 막상 그 대상이 내 가족이라면

그 경우에도 공리주의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이렇게 정의를 말하기는 쉽지만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정의의 뜻을 알고 있지만 막상 현실의 구체적인 사례에 들어가면

다양한 가치관만큼이나 기준을 잡기도 어렵고 헷갈리기 쉽다.

어찌 보면 정의란 개인의 가치관만큼 다양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나라에서는

더욱 정의의 기준이 제멋대로이기 쉽다.

현대의 정의는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민주주의 하면 당연히 따라다니는 다수결의 원칙이란

결국 다수의 행복이라는 벤덤의 양적 공리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고속도로가 지나가서 사라지는 마을의 주민에게 정의를 묻는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자신들의 희생이 정의라고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그 도로를 이용하는 다수의 이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강행하는

정부의 의지는 공리주의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렇듯 오늘날 국가의 정책은 상당수가 공리주의를 깔고 있다.

 

동성끼리의 결혼의 합법화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따지면 개인의 선택이니 정의이고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도덕주의의 입장이라면 보수는 아니라 할 것이고

진보의 입장이라면 정의라 할 것이다.

 

이렇듯 현대의 문제들은 대부분 정의를 그저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기엔 너무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담고 있다.

정의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수학의 공식이라기보다는

같은 답이지만 푸는 방식이 여러 가지인 수학 문제에 가깝다.

 

어쩌면 현대의 정의란 결국 다수가 찬성하는

도덕이나 가치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도덕주의의 질적 공리주의 버전이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수결이 최선이자

최후의 답 또는 해결책이니 말이다.

 

우리네 삶이 늘 그러하듯이

답은 항상 정해졌지만 답을 내는 과정은 제각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