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내겐 딱히 멘토라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고민을 토로한 친구나 동료들은 고만고만한 충고를 할 뿐이고

내용은 그저 넋두리나 한탄, 잘해야 공감이었다.

 

그들 역시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때로는 오히려 내가 위로하고 토닥여줘야 하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의지할 유일한 멘토는 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책은 불친절한 멘토였다.

내 고민을 듣고 맞춤형으로 답을 주진 않았다.

 

그저 비슷하게 두리뭉실하게 답을 하곤 했다.

답을 찾으며 한 권 한 권 읽을 수밖에 없었고

운이 좋을 땐 비슷한 답을 찾았지만

대부분은 의문점을 안고 기나긴 시간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 어찌 맞춤형 답이 있겠는가?

우주를 덮는 장자의 오지랖을 내게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니체의 영원회귀는 피부에 와 닿았지만 돌아서면 그만이고

부처님의 고귀한 진리는 공염불이 되기 일쑤였다.

 

내가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지혜란 허약했다.

어설픈 답은 늘 치열한 현실에서 박살이 났다.

돌아서면 제자리. 늘 같은 자리를 맴돌 뿐

묘수는 없었다. 있다 한들 찾을 도리가 없었다.

 

책은 그저 죽어라 하소연하는

중생을 말없이 바라보는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였다.

그렇다고 책을 버릴 수는 없었으니

그래도 내 고민을 들어주는 건 말 없이 책장에 꽂혀 있는 그들 뿐이었다.

 

그렇지만 책은 당장에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답을 찾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나를 밀어주고 지탱해주는 친구였다.

 

진정한 친구란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망했다고 급전을 만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재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말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는

책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젊은 날의 치열한 고민이

이젠 그저 그런 지난날의 흔적으로 퇴색되었고

전쟁 후 훈장처럼 내 가슴에 남아있지만

 

책은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숙제를

여전히 같이 해결해야 할 소중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묵묵히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멘토임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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