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1. 학벌 : 서울대 졸, 미국으로 유학을 가 하버드대 졸(끝내 준다)

2. 외국어 : 3개 국어 정도는......(외국어에 한이 맺혀...)

3. 운동 : 골프, 테니스, 승마(귀족적이기에)

              격투기(드라마 주인공은 애인을 지키기 위해 다 싸움을 잘함)

4. 외모 : 18580킬로 정도, 준수한 외모(드라마 주인공처럼)

5. 두뇌 : 아이큐 150 정도(이게 어느 수준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똑똑하다.)

6. 성격 : 적극적 진취적, 다정다감하나 때로는 이성적임

           (그냥 호감형이란 말이다.)

7. 집안 : 아버지는 사업가 어머니는 대학교수 또는 예술가

8. 형제 : 의사1, 법조인1, 과학자1 정도(좋은 집안에선 흔한 일이지)

9, 출생지와 거주지 : 서울 강남(우리나라는 이 단어 하나면 끝이다.)

10. 취미 : 기타와 노래를 잘하고 피아노도 조금 칠 줄 알고 그림 감상에도                  조예가 있음(귀족들은 다 기본이지)

11. 직업 : 자아 성취와 워라밸이 가능한 전문 직종. 변호사, 개업 의사

                 사업가(옛날엔 재미교포 사업가라면 끔뻑 죽었다.)

12. 배우자 : 전문직업과 고학력 교양을 보유하고 합리적이면서 다정다감

             (와이프가 보면 너는? 하며 욕을 한 바가지. )

13. 자녀 : 11. 위의 스펙을 되풀이 할 전도유망한 인재로 자라고 있음

             (뉴스에서처럼 클럽에서 마약? )

 

신이 내세에 다시 우리나라에 태어나고

내 스펙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렇게 태어나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 내용을 좀 적어 보았다.

 

너무 세속적이라 부끄럽지만 기만하는 것보다 솔직한 게 낫다.

물론 이 정도 스펙을 가진 사람이 생각 외로 흔할 수도 있겠지만

내 수준으로 봤을 때 이게 내 물욕을 최대한 담은 것이다.

 

조건엔 타고난 것과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있다.

부모, 외모, 두뇌, 성격, 집안, 출생지 등은 타고난 것이고

나머지는 노력으로 가능하다.

다만 후천적인 노력도 결국 타고난 환경의 영향에

크게 좌우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거세지만 여기에선 더는 따지지 않겠다.

 

그런데

내가 과연 이런 조건을 갖고 있다면 행복할까?

행복은 이러한 조건만 충족한다면 가능한 것일까?

현재는 내가 이런 조건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엄청나게 행복할 것 같다.

문제는 대부분 이런 스펙을 가질 수 없다는 게 현실인데

이런 배경이 없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말로 행복론이란 쉽게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

난 그것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마음을 먹는 방법이나 형식을 일컫는 것이지 않을까?

 

한마디로 나 같은 범인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이란

높게 매달린 포도를 보고 돌아서는 자기기만에서 시작하여

자기 손에 쥔 포도 몇 알로 행복하다는 자기 확신으로 마무리를 하는

일련의 정신과 치료 과정일 수 있다.


가끔 뉴스에서 마주치는 연예인이나 재벌들의 일탈이나 자살을 보며

이런 복 받은 인생에도 애로사항이 있다는 걸 잠깐 확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은연중에 기쁨의 미소나 안도의 한숨으로

위로 받는 나를 마주하는 건 사실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런 예외적인 사건 몇 개로 돈과 명예가 있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의 일이고

또 그렇다고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니 큰 의미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배제하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적당한 부를 기반으로 한 적절한 삶의 질이 보장되어야

평균적인 행복을 거론할 수 있다.

최소한의 수준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건 극기 훈련이나 종교적인 수행이지

통속적인 행복론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부탄이나 네팔처럼 못사는데 행복도는 높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국가별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북유럽처럼 부유하고 복지가 잘되어 있는 나라인 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다.

 

많은 행복 연구는 행복을 가치와 결부시킨다.

행복이란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도구적 가치와 본질적 가치다.

수단으로서의 가치와 그 자체로서의 본원적인 가치다.

당연히 행복의 가치는 본질적 가치에서 비롯된다.

 

내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가치로 도구적 가치다.

돈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기에 도구적 가치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대부분은 엄밀하게 따지면 대부분 도구적 가치다.

그것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돈이 많아 행복한 게 아니고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자유가 확보되기에 행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의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가치인 것이 무엇일까?

쾌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즐거움이 과연 본질적 가치인가?

 

공부하는 목적이 좋은 학교를 위한 것이라면 도구적 가치이고

배우는 즐거움이라면 본질적인 가치인가?

직장을 다니는 것이 월급을 타기 위한 것이라면 도구적 가치이고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면 본원적인 가치인가?

 

과연 배우는 즐거움은 다른 것들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가치인가?

그 안에는 자기만족이나,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자아실현은 돈 없이도 가능한 가치인가?

박봉에 시달려도 내가 좋으면 행복할 수 있는 본질적 가치인가?

 

부자라는 것은 행복의 본질적 가치에 다가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그 돈의 액수만큼 더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도구적 가치와 근본적 가치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다만 어느 가치가 주도적이냐 지엽적이냐의 차이가 아닐까?

 

어찌 되었든 원론적으로 도구적 가치에 몰두하는 것보다

본질적 가치에 의미를 두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임은 통상적인 결론이다.

그렇지만 도구적 가치라 하여 무조건 폄하될 일도 아니고

본질적 가치라고 규정할 만한 것도 사실 그다지 명확하지 않음도 사실이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돈 없이 행복하기도 쉽지 않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행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자가 되도록 노력하자.

그래서 부자가 된다면 그에 맞는 행복을 추구하고

만약 부자가 되지 못했다면 부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버리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다른 길을 모색해보자.

 

부자를 바탕으로 행복할 방법은 단순하고 쉬우며 성공률도 높지만

돈 없이 행복을 얻는 것은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우며 실패율이 높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행복에 있어서도 풀하우스다.

돈이 없다는 건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패를 쥐지 못한 것과 같으니

나머지 자잘한 패로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을 커버할 수밖에 없다.

 

늘 쉬운 길을 어렵게 가야만 하니 이처럼 장문의 글을 다닥다닥

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돈 대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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