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주제가 있다.
난 집을 그리길 좋아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심코 낙서를 하다 보면 집 한 채가 있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의 스위트 홈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버는 족족 써버리길 좋아했던 아버지는 꾸준한 벌이가 있었음에도
평생 제대로 된 집 한 채를 소유하지 못하고 전세를 전전하셨고
내가 20살이 넘어서야 겨우 5층짜리 연립주택 하나를 저렴하게 장만하셨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던 옛날, 늘 주인집에 얹혀살며
알게 모르게 눈치를 봐야 했던 세입자의 설움이란
내 집 여부를 떠나 아파트에서 독립적으로 산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는 친구도 잘 데려오지 않았고
맘에 안 드는 집주인을 만났을 땐 문 열어 달라는 말이 하기 싫어
담장을 넘어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게 스위트 홈이란 당연히 내 소유의 집이고
당시는 아파트가 별로 없어서 당연히 단독주택만을 상상할 수 있었다.
파란 잔디가 심어진 넓은 마당 한쪽엔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화단이 있고
번듯한 2층(꼭 2층이어야 한다) 건물의 넓은 통창으로 집안의 따스한 불빛이 퍼져 나오고
마당에 있는 멋진 파라솔 아래 온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한다....
이 로망을 난 아직도 실현하지 못했다.
좁지 않은 아파트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층간 소음 제외)
남 부럽지 않게(주관적으로) 살고 있지만 이건 그냥 거주하는 집일 뿐
내 로망을 충족하진 못한다.
난 앞으로도 나의 스위트 홈을 그저 그림으로나 만날 것 같다.
그것도 열심히 그려야 그럴듯한 집을 만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