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떠들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답답하다.

현실과 문제점은 늘 명확한데 해결은 요원하다.

사람들의 대화엔 주인공이 빠져 있다.

나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없다.


얼핏 보면 다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아니다.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지 내 이야기, 내 문제는 아니다.

각자 쓰고 있는 페르소나의 끝없는 나열이지

진짜 내 모습은 그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다.

 

자식, 부모, 친구, 회사, 세상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지만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는 없다.

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말은 없다.

 

그저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정작 다 외부일 뿐, 정작 내면의 이야기는 못 한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루한 이야기다. 창피한 이야기다.

 

진짜 삶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말할 자리도, 들어 줄 사람도 없다.

다들 자기 이야기 하기 바쁘다. 그저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들은 척할 뿐이다. 상대의 말은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거기에 진정성과 진지함은 부족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로 이웃으로 친구로 동료로

공유하고 고민하고 공감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줄 그런 따뜻한 이야기는 없다그저 먹고 자고 쓰고 싸다 죽는 이야기 뿐

 

그래서 난 요즘 사람을 만나는 게 시들하다.

평생 들어왔던 수많은 잡론들이 지겹다.

껍데기만 다를 뿐 늘 같은 이야기의 끝없는 되돌이표다.

만날 이야기 해 봐야 그게 그 말이다.

 

물론 수다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렇게라도 떠들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그냥 허전하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지겹고

그들은 내 말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로 치부한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유한하다.

가볍게 웃고 떠들며 감정의 찌꺼기를 소화하는 데만 소비하기엔 너무 아깝다.

 

팩트를 말한다고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자 말자

눈에 보이는 데로 말한다고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여기지 말자

팩트가 아니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삶을 논할 수 있다.

꼭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삶의 중심에 명확히 닿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하고 싶다.

난 대화를 하고 싶다.

난 넓고 깊고 푸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깊은 바다 속 흰수염고래의 자유로운 헤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우주 저편 광활한 공간 끝에 서 있을 누군가를 말하고 싶다.

난 삶의 우연과 죽음의 필연에 대하여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흰수염고래에도, 우주에도, 우연과 필연에도,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존재한다삶의 희노애락은 다양한 옷차림을 하고 있을 뿐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우리가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한없이 진지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끝없이 가볍지만 결코 얇지 않은,

가없이 슬프지만 결코 비참하지 않은,

 

그런 소담스런 이야기를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누군가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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