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삶이 무료해서, 아니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다가

우연히 인근 대학부설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을 뒤지다 만난 인연

바로 어반스케치’(여행스케치라고도 한다).

 

그림과의 인연을 굳이 찾는다면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는 나의 전부였기에

학교 다음으로 많이 머물렀던 곳은 동네 만화방이었고

가장 많이 본 것도 TV 일본 애니였다.

 

심지어는 만화책의 한 부분을 주인 몰래 오려 내어 집에 가지고 와 그렸다.

내가 그림에 재능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만화 덕후였던 건 확실하다.

그때 그렸던 만화가 실력이나 재능과는 상관없이

그림 자체를 낯설게 여기지 않게 한 것도 확실한 것 같다.

 

만화를 제외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렸던 그림일기와

갈 사람이 없어 뽑혀 갔던 사생대회에서

크레파스로 끄적끄적 그렸던 그림이 전부다.

그 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은 거의 없으니

내 그림은 크레파스로 끝났다고 봐야겠다.

그게 내가 가진 그림과의 인연의 전부였다.

 

그렇게 독서를 했어도 미술 관련 책은 읽은 기억이 없으니

난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어쩌면 난 우연히 로봇만을 좋아했을 뿐 그림 자체엔 소질도, 관심도 없었을 수 있다.

 

기타처럼 꼭 배워야겠다는 욕망도 없었고

영어 회화처럼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시작되었다. 별다른 의미부여도 동기도 없이 말이다.

삶의 시작에서 만났던 만화가 어반스케치로 돌아왔다.

 

막상 하려니 그림도 종류가 다양했다

동양화나 서양화는 너무 거창하니 각설하고

우리 같은 문외한이 취미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을 보면

어반스케치, 문인화, 보태니컬아트(식물세밀화),

인물화(초상화), 채색화(민화), 수채화, 유화, 한국화 등 이다.

그림은 아니지만 유사한 것 켈리그라피도 있다.

 

이 중 어반스케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그림들은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거다 싶었다. 간지나 보였다.

피카소, 고흐, 세잔, 모네 등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은 아무리 봐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림 좀 그려본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스케치와 수채화풍의 그림들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다.

 

너무 먼 나라의 위대한 예술 작품 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한 편을 끄적 끄적 그린

평범한 그림들이 훨씬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래 이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야. 당장 시작하자.

그렇게 인생 막장에 난 펜과 붓을 들고야 말았다.

결국 그림도 내 운명의 한 부분이었을까?

언젠가는 만났어야 할 인연이었을까?

 

하다 보면 알겠지. 두고 볼 일이다.


(어반스케치 예시- 내가 그린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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