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전자의 지시로 환경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생존기계다.

지금까지 멸종되지 않고 이 세계에 생존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유전자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는 것인가?

정말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면 인간과 동물이 뭐가 다른가?

 

중요한 것은 유전자의 목적은 오직 생존과 번식이며

우리는 유전자를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결정이 유전자의 통제하에 있다면

우리가 유전자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자유의지를 주장한다면 유전자와의 관계는

다음 2가지일 것이다.

 

첫째, 유전자의 동의 내지는 묵인을 받고 있는 관계.

둘째, 유전자의 반대로 긴장 상태에 있거나 끈질긴 방해를 받고 있는 관계.

 

자유의지란 어쨌든 기존의 관행이나 관습을 거부하는 독자적인 행위일

가능성이 크니까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낯선 일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주장하며 뭔가를 시도했을 때

유전자는 그게 생존에 불리하다면 극렬하게 반대하며 방해를 할 것이며

우리의 자유의지는 꺾이고 말 것이다.

 

반대로 생존에 유리하다면 지원하거나 뒤에서 모른 척 할 것이며

우리는 그게 순수한 내 의지였다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통제할 수도, 배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유전자와 협상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유전자의 검열을 교묘히 피하거나

혹은 설득해서 내 의지를 관철하는 수밖에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다.

일단 유전자가 움직이는 원리를 알고 유전자의 생존본능이

작동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내 의지를 이어가야 한다.

그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는 심리학과 뇌과학책을 보면 된다.

 

난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단언은 못 하겠다.

다만 현실적으로 유전자의 검열을 통과해야만 실행에 옮길 수 있기에

 

생존에 방해가 될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유전자의 동의를 받기 위한 사전협상을 적극적으로 하겠다.

즉 내 자유의지의 범위는 유전자와의 협상 범위에 달려있으니까.

 

나는 내 몸의 실질적 주인이 아니다. 바지사장이다.

유전자는 나를 전면에 내세우고 뒤에서 조종하는 실소유자다.

 

그래서 난 유전자와 협상을 시도했다.

 

(유전자) 너 지금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책 보고 글 쓸 시간에

재미있는 드라마나 보는 게 훨씬 나을 거야. 지금 넷플릭스에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은데.

 

() 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나는 의미가 있으면 재미는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난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유전자) 글쎄. 네가 말하는 그 나가 바로 난데 무슨 소리야. 내가 아는

너는 평생 말만 했지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생각만 있었지 의지도 부족했고.

 

그런 네가 갑자기 이러는 건 너답지 않아. 글을 쓰는 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고 당장 돈도 안되는 일이야. 그러니 고생하지 말고 남들처럼 그냥 편하게 살아.

 

() 나도 알지만 내 마음속에 늘 그런 욕구가 있어. 죽기 전에 꼭 성취하고 싶어.

 

(유전자) 네가 지금 이팔청춘이냐? 얘들도 아니고

다 늙어서 무슨 망상이냐.

그렇게 책을 보고 싶으면 재미로 몇 권 정도만 보는 게 어때?

 

() 아니야 난 하고 싶어. 그러나 네가 좀 도와줘. 너도 내가 잘되면 좋은 거잖아.

 

(유전자) 물론 나는 늘 네 편이야. 다만 네가 생존에 불필요한 일들을 자꾸 해서 충고하는 거야. 그거 아니어도 넌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어.

나는 네가 나중에 네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 길게 보면 당장은 힘들고 사는데 도움이 안될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은 나를 위하는 일이야. 하여튼 난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도와줬으면 좋겠어.

 

(유전자) 참 끈질기군. 그러면 당장은 지켜보겠어. 내가 알기로 넌 끈기가 없는 편이야. 조만간 포기 할거야. 만약 네가 그때까지도 지속적으로

한다면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어.

 

() : (약간 자신이 떨어진 목소리로) 고마워. (속으로)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이제껏 늘 그랬잖아. 그때마다 넌 현실을 냉정하게 말해주었고. 이번에도 똑같을지 몰라. 하지만 또 모르잖아.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가 유전자의 본능이고 어디서부터 자유의지인지

구분하는 건 어렵다. 뒤섞여 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 이 글도 순수한 내 의지인지 잘 모르겠다.

 

자유의지란 유전자의 전면 통제를 거부한 것이다.

본능이랄 수 있는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인 뇌간이나 변연계의 지시를 받지 않고 인간의 뇌인 신피질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살아남았고

거기에다 지구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으며

심지어 현재까지 확인 범위지만 우주 유일의 문명까지 이룩하였다.

 

나 하나 살자고 다른 모두를 버릴 수 있는

쥐새끼와 다를 바 없는 비열하고 원초적인 생존의 이기성부터

 

생판 모르는 인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거룩한 인간까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유전자만으로 담기에는 그 그릇이 너무 커져 버렸다.

 

아직까지 우리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유전자가 확실하지만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지능 또한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안다는 건 바꿀 수 있다는 걸 포함하기에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한계를 알아가고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역량 또한 가져가고 있음을 안다.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보다 인간의 뇌가 차지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동물보다 인간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고

 

과학 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면 할수록

그 시기는 더 빨리 도래할 것이다.

 

모든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선 미래의 어는 순간

인간은 순수한 자유의지만 남을 수도 있다.

 

더 이상 생존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파충류의 뇌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만 생존에 대한 불안이 해소된 결과가 장기적으로

인류의 영속에 유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본질적으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물학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빛나는 사유와 그윽한 성찰의 과정을 밟아온 결과물이 자유의지가 아닐까?

 

유전자의 반대와 견제,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얻고자 한 노력의 순수결정체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가? 로 질문하면 틀렸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정확한 질문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유전자와 환경과의 투쟁이며

문명이란 그 투쟁의 결과이고

자유의지는 그 전리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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