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일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과장하면 정반대의 과정이다.
읽는 것은 입력의 과정이고 쓰는 것은 출력의 과정이다.
읽을 때는 눈을 사용하고 쓸 때는 손가락을 사용한다.
읽을 때는 이해의 과정이고 쓸 때는 정리와 사유의 결과다.
읽을 때는 독자지만 쓸 때는 작가의 마음이다.
읽을 때는 비평가지만 쓸 때는 창작자의 입장이다.
읽는 것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쓰는 것은 능동적으로 표출하는 과정이다.
읽는 것도 힘들긴 하지만 쓰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입장 차이가 새삼 날카롭게 느껴진다.
수준 높은 책을 읽을 땐,
마치 세계적인 사상가가 된 마냥 우쭐한 기분이 들곤 하지만
막상 한 줄이라도 쓸라치면 글짓기 숙제를 하고 있는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는 자괴감이 든다.
창작자의 마음으로 작가의 자세로
봇물처럼 넘쳐나는 영감과 사유를 미친 듯이 써재끼는
패기를 부리다가 막상 다 쓴 글을 읽다 보면
비평가의 자세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비평가의 입장에서 내 글을 평가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좋은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비평가로서의 안목을 나름 갖추게 되니
조잡한 내 글이 얼마나 실망스럽겠는가?
당연한 일이다. 내가 가진 창작자로서의 능력이 10이라면
비평가로서의 능력은 100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부끄럽더라도 계속 써야 한다.
허접한 한 줄의 글이라도 분명 창작활동이니
쓰다 보면 언젠가는 창작자로서의 내 능력도 비평가로서의 능력에
육박할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래저래 글을 쓴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