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한 마리가 한낮의 살인적인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파트 마당을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다.

이미 바닥은 뜨거운 열기로 후끈후끈한 상태다.

 

어리석은 지렁이는 자기가 살 수 있는 축축한 땅이 있는 화단 쪽이 아닌

넓은 마당 한가운데로 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지렁이는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반대편 화단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햇볕에 온몸이 말라 횡사할 가능성이 거의 100%였다.

말라 죽지 않더라도 사람들 발에, 아이들의 노리갯감으로 든지.

 

안타까운 마음에 집어 들어 화단 그늘에 넣어 주었다.

지렁이는 방금 찰나의 순간에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졌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한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갔다.

 

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지렁이는 아마도 열심히 앞으로 기어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땡볕에 말라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열심히만 하는 것에 익숙하지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은

서투르다.

방향이 맞다면 1m만 더 가면 성공할 것을 죽자고 10m도 넘게 갔지만 좌절하고 만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러지 않은가?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가?

방향을 몰라서, 방향이 틀려서 헤매다 아까운 시간을 다 소비하고

끝내 후회하는 어리석은 지렁이가 바로 내 모습이지 않은가?

 

그래도 노력했다고, 열심히 했다고 자위하고 싶다면 좋다.

꼭 성공해야만 의미 있는 인생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왕이면 성공하여 잘 살고 자아실현을 마음껏 한 삶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조금 늦더라도 서둘지 말고 방향을 잘 찾아보자.

일단 뛰기 전에 다시 한번 목표를 점검하자.

그리고 천천히 뛰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인생의 전략을 올바르게 세우자.

그 다음에 뛰어도 충분하다.

 

방금 극적으로 살아난 저 어리석은(?) 지렁이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 지렁이는 운이라도 좋았다.

 

추신 : 방향을 잡는 덴 독서가 최고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 같아 생략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다이제스터 2023-07-3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책을베고자는남자 님. ^^
그 동안 알라딘 북플에 격조하셨습니다. ^^

전 요즘 계획이나 방향 설정이 과연 의미있는지 자꾸 의심이 듭니다.
실행 과정에서 온통 예상치 못한 우연이 넘 많이 개입되는 듯 합니다. ㅠ

책을베고자는남자 2023-08-01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길에는 신호등과 교차로가 있습니다.
의심과 우연은 신호등이며 교차로 같은 것이라 봅니다.
신호등 앞에 일단 서서 길이 맞는가 다시 한 번 네비를 점검해 보고
교차로에서 어는 방향으로 가는게 더 빠를 건지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겠지요

책을베고자는남자 2023-08-0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잘 가고 계신데 뭐가 걱정입니까? 그 꾸준함과 끈기를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