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평생의 화두다.

긴 세월 내 삶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사주명리를 접한 것도 내 운명이 궁금해서다.

무작위로 받은 내 운명의 패가 무엇인지, 왜 수많은 길 중 현재의 길을 택했는지, 왜 선택한 운명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나를 얽어매고 있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씩씩하게 잘 가는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나는 그들처럼 살지 못하고 남의 눈치나 보며 힘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궁금했다.

 

수많은 철학자를 만나며 내가 누군지, 세상은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물었지만 알듯 말 듯 귓가를 간지럽히는 어려운 말만 들었을 뿐 딱 꽂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벼락처럼 나를 때릴 수 있는 한 구절의 간단명료한 답이었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강령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즐겁게 살면 되는가 싶어 소질도 없는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불러보고 그림도 그려 보았다.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팁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겐 해결책일 수도 있지만 내겐 아직 부족했다.

 

그러나 이젠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인생에 대한 고민도 한정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잘 살기 위해 한 고민인데 어느새 살 만큼 살아 버린 것이다. 이젠 억지로라도 결론을 내려야 될 것 같은 강박이 밀려온다.

 

평생 읽고, 쓰고, 배우고, 고민하고, 사색하고 성찰하여 낸 결론은 결국 또 평범한 내용이다. 수많은 성현들이 설파하고 강조한 말

 

현재를 살아라

 

니체가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한 영원히 반복되는 힘든 삶에 대한 절대 긍정도 그러하고 현실에서 답을 찾는 왕양명의 사상마련(事上磨鍊)도 그러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삶 속에서 과거의 집착도 미래의 불안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온전히 살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도 그러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서 이보다 더 명쾌한 답은 없을 것 같다.

 

결론을 내렸다.

너무나 뻔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하여 체험적으로 내린 것이다.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수많은 고민과 경험으로 성찰한 것만 내 것이다. 온몸과 마음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내 일상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행동을 변화시키고 내 마음에 작용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이런 의미일 것이다.

 

현재를 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이걸 나머지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될까?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것이다. 온전한 현재를 살기 위해 난

 

먼저 마음을 닦는다. 잠자기 전 잠깐이라도 명상을 한다.

아무 생각 없다가도 눈만 감으면 끊임없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잡념을 밀어내고 또 밀어낸다. 모든 잡념은 과거의 회한과 미래의 불안이기에 현재의 것이 아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어느 경계에 존재하기에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힌 한,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를 버리면 시간은 온통 현재만 남는다.

과거와 미래를 버리기 위해선 의식적으로 잡념을 쫓아내야 한다. 결국 과거와 미래는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좌정하고 앉아 고요히 숨 쉬며 호흡의 들고 나감을 관찰한다. 중간에 다른 생각이 들면 얼른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의 관찰로 돌아간다. 관찰의 다른 말은 집중이다. 인간은 절대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내가 호흡에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잡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호흡을 놓쳤다는 것이다. 고로 호흡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반복하다 습관이 되면 나도 모르게 일상 생활에서 의식적으로 잡념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 명상의 핵심인 것이다.

 

처음엔 온통 잡생각 뿐이다. 머리가 복잡할 땐 앉아 있는 내내 잡생각만 하다 끝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날마다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잡념이 줄어들고 가끔 나도 모르게 잠깐이나마 무아지경에 빠질 때도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명상 후 마음이 깨끗이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잡념이 없어졌다면 불교 수행에서는 삼매(三昧)의 경지에 들었다 한다.

삼매의 경지는 불교 수행의 첫 단추다. 일단 삼매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수행의 경지에까지 다다를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마인드컨트롤만 되어 스트레스만 줄일 수 있어도 상당한 성공이다. 그걸로도 충분히 족하다.

 

살다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싶으면 의식적으로 명상을 진하게 한다. 온갖 망상이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꾹 참고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그래서 난 주위에 명상을 생활화할 것을 전도하고 다닌다.

 

마음을 닦았으면 이제 몸을 닦기로 한다.

몸이 먼저냐 마음이 우선이냐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뚜렷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 한다. 약한 육체를 극복하는 강인한 정신이 있긴 하지만 범인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쉽게 살아야 한다. 몸이 강해지만 마음도 따라 간다.

육체를 단련하면 정신이 강인해진다는 것은 과학에서 어느 정도 밝혀진 일이다.

그래서 가급적 많이 걷고 근력운동도 한다. 지나치게 많이 할 필요는 없다. 자기 몸에 맞는 수준으로 꾸준히 하면 된다. 뭐든 과유불급이니 적당히 하자.

 

세 번째로 취미활동을 열심히 한다.

명상을 하다 깨달은 게 있다. 취미도 명상의 원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명상의 핵심이 집중인데 재미있는 취미를 하다 보면 집중이 저절로 되는 것이다.

몇 시간 앉아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 보면 힐링이 된다. 물론, 뭔가를 배우는 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요는 취미를 일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목표나 성취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탓하고 괴롭히지 말고 취미는 취미로서 즐기라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이다.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에 나왔고 내가 원한다고 다 얻을 수도 없다는 게 세상의 이치다.

가족, 직장,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삶의 희노애락은 이 세상의 수많은 생물 중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겪어야 할 숙명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난 인간으로 태어남을 감사하고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기에 겪어야 하는 성장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보잘 것 없지만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정하지 않으며

죽는 날까지 더 나은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혹시라도 다음 생애가 있어 반복된다 해도 긍정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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