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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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흰 것들에 대한 글이라기보단

   너무 일찍 사라져버린 누이에 대한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

   조각조각 흰 것들을 이어붙인 망자에게 주는 선물. 수의.


2.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에 기억을 지워버린 사람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만화로 그려보려다가 지금보다 더 실력이 미개하던 시절이었던지라

   결국 포기하고 어떻게든 형태 있는 것으로 남겨보고자 글로 썼다.

   그리고 그 글의 마지막은

   기억을 되살린 이가 죽은 이를 위한 도피처를 만드는 글을 쓰는 걸로 끝난다.

   (기억을 잃었던 이의 직업은 소설가로 설정되어 있었다.)


3. 어제였나. 오늘 새벽이었나.

   넷플릭스에서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았다. 정확히는 보다 말았다.

   그리고 과거에 썼던 글과

   지금 아이디어 노트에 적혀있는 하나의 단상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글로 성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라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두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애니의 그림은 크리스의 세계가 된다.

   이에 죽은 이를 떠나보지 못 해 그의 영혼을 자신의 작업에 불러들여

   삶을 영원히 반복하게 하는 누군가를 상상했다.

   결국 그 끝은 비뚤어져버린 사랑. 


4. 언제부턴가 흰 것을 생각할 때면 자동적으로 회색이 떠오르곤 한다.

   아마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까 싶은데.

   보통 그림에서 흰색을 표현하고자 할 때

   밝은 면을 칠하는 것이 아닌 그림자의 영역을 칠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 그림자의 영역에 칠하는 색은

   대부분 푸른색 계열이거나 거기에 갈색이 더 해진 회색 계열.

   물론 강한 조명이라던가 햇빛이 비추면 좀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내가 쓰던 색은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상상하는 흰 것들은 눈부시게 하얗다기보다는

   바래서 색이 없어진 것에 가깝다.

   바래거나 혹은 타고 난 뒤 희미해진 것들.

   

5. 문득 아직 죽음을 목격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는 것이 아플 정도로 애정을 쏟은 적 또한 없으니

   이별과 죽음은 아직 내게 간접적인 무언가들이다.

   그래서일까. 상실과 애도를 그려내는 것들에 쉽게 끌리는 편이다.

   물론 인내심이 없으니 끝까지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6. 해서 그녀는 만족하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이 글이 그녀의 누이에 대한 애도라 확신하는 나는

   그녀가 바랬던 만큼 그녀의 누이를 위한 세계가 완공된 건지

   아니면 결말에서 느낀 흰 벽들의 건물의 긴 복도에서

   문을 빠져나가는 듯한 그 모습이 그녀가 그리고자 했던 건지.

   그렇다면 언젠가 그녀의 누이는 그녀의 또다른 글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들어와서 빠져나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목적이었는지.


7. 어쨌든 누군가를 위해 세계를 만든다- 는 것은

   창작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생각 중인 이야기는 종종 틈날 때마다 다듬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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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는 내가 끼니마다 음식을 만들고, 때로 쓸고 닦기도 하는 부엌의 후미진 곳에서 소리 없이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양파가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양이 시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소설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아마 작가의 말의 저 문장들이 이 소설집의 인상을 설명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일상의 것들에 이질적인 그림자가 물들기 시작하는 순간. 혹은 잊혀진 것들이 물러지고 삭아져 낯설고 기괴한 이형이 되는 찰나.

그러한 순간들에 대한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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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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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들이 있다.


읽는 내내 공감하고 동의하면서도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찌 해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만이 남는 그런 책들.

그것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를 따지자는 건 아니고

그저 지금의 이 현실은 어떤 것인가 에 대해 

되짚어 볼 계기가 되었다 정도랄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세대는 무기력 그 자체였다.

물론 개인차야 있겠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공부해서 대학만 가자' 했더니

대학 나온 자들이 너무 많아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되어버린 세대-

이것이 내가 인지하는 나의 세대였다.


그 중에서 난 애매하게 모난 돌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있었으되 재능은 부여받지 못 했고

부여받지 못 한 재능 

후천적으로라도 익히자 할 만큼 경제적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차피 재능 없는 마당에 앗싸리 포기하고 먹고만 살자 라고 하기에는

또 고집이 너무 셌던 거지. 


그런 식으로 여러 해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다 보니 

최종적으로 형성된 나의 모습은

이 책에 나오는 개인주의자 와 

집단주의 그 중간 어드메에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보통의 사회 수순과는 살짝 멀어져 있는데

또 어느 선 바깥에서 보면 

그 집단의 일부로 보이기도 하는 그런 입장?

사실 이런 입장에 대해 크게 불만은 없는 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애매해도 되는가 싶기도 하다.


요즘처럼 변화가 급격하고 

사람들의 감정마저 수시로 고저를 오가는데다

그 격렬함을 감추지 않는 것마저 유행처럼 번져가는 상황에서

나 혼자 이도 저도 아니지만 난 괜찮아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이렇게 변하고 변하다가 다 변해서 무너져버리면

그래서 내 발밑의 원만큼의 땅만 남기고 낭떠러지가 되어버리면


그 때도 개인이 행복할 수 있을지.


여기까지 생각이 들면 암담해진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개인으로써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최소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해서 뭐든 해야 돼 라고 생각하지만

당장 출근해서 매출 압박을 받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리곤 한다.


이렇게 개인이 사라져 가는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더 집착적으로 뭐든 그리고 있는가도 모르지.

...언제까지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그림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순 있을까?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만 현재 내 그림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정진만이 답이거늘 

해가 바뀜과 동시에 체력이 50% 이상 절감된 느낌이다.


아무튼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겠지. 아마도.

그것이 그리는 거든. 그저 살아가는 것이든. 

그리고 그 와중에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일단은 그 정도까지라도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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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이해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지음, 박민철 옮김 / 하나의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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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블로그에 책 제목을 써 넣자마자

살예방상담센터의 연락처들이 보이는 것에 놀랐다.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한 리뷰를 복사해서 서재에도 올리는 중이다.

 작성자 외 보는 사람도 그 연락처들이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업로드 된 이후에도 그 연락처들이 계속 보인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자살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건 확신하지 못 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럴 생각도 체력도 없다.


나름의 우울과 내부적으로만 격정적인 시기를 지나오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은


우울감이 심할 때는 감각과 기억이 둔해진다는 것


이 우울감은 나의 내적, 외적에도 요인이 있겠다만

가족력 역시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가족력은 부모 양측 모두에게 있었다는 것


이 정도까지 깨닫고 나자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에 대한 죄책감을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었더랬다.


'내가 이상해서 우울한 것만이 아니잖아! 피가 이런 걸 어쩌라고!!'

라는 자기합리화가 작용한 면도 분명 있으리라.


사실 자살의 이유가 무엇인지

우울의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 대한 것이라면 시간이 지난 후에

이랬니 저랬니 하면서 판가름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타인의 경우 과연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일까 싶다.


그저 사례만 모아놓은 것 같다- 는 일독의 감상보다는

깊이 들어간 것 같다- 는 게 이독의 감상이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문제라는 것은 똑같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풍을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병이나 사고 등을 은유하면서

가는 데는 순서없다. 사람 언제 죽을 지 모른다 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이 리뷰를 쓰며 그 말을 떠올리다가

문득 지금 남아있는 우리 모두가 용케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면서 자살 충동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듣긴 들었다만 어쨌든.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에

그 죽음의 원인으로 자살도 끼워넣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누가 언제.

그만큼 힘들어서 터질지 모른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도울 수 있지?

애초에 내가 도울 수 있는 문제긴 한가?


늘 그렇듯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과 제발 그만 좀 하라는 생각이 충돌한다.

이 역시 자살성향이 깃든 가족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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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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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리뷰를 쓰다가 지워버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것 역시 혼란의 일종인가 싶긴 하지만

솔직한 리뷰를 쓰자면

지난 나의 삶을 간증 수준으로 이야기 해야 할 듯 싶은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 마음에

에둘러 가다 보니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리뷰가 되고 말더라 -

라는 게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나의 삶을 간증하지 않고 리뷰를 쓰기 위해

사회에서의 내가 아닌 창작하는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면

점점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이게 맞는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특히 최근 어두운 가족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하면서는 

이러한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 가족에서는 '이기적이고 저만 아는 엄마' 가 나오는데

과연 이 설정이 다른 설정에 비해 너무 강해 보이진 않는지

이 가족 안에서의 비극이 과연 '엄마' 의 탓으로 여겨지지는 않을런지

내가 저 엄마의 설정을 저렇게 끌고 간 이유는 무엇인지

엄마 라는 인물이 저렇게 된 이유는 과연 잘 설명이 됐는지


거듭 물어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뼈대가 잡혀가는 꼴을 보자면

뭘 어떻게 해도 그 '어두운 가족' 의 이야기는 '엄마' 때문이 되어버릴 것 같다.


이건 보는 나의 시각 때문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꾸며내는 나의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서 있는 이 땅, 이 사회의 환경 때문인지

다른 사람이 보면 다르게 볼 수 있는 건지

수시로 의문이 반복된다.


멋 모르고 좋아하던 것들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에도 이게 학습된 결과인지 진짜 생각인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내뱉고 나서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 들어 나타난 경향들이다.


이것이 과연 시야가 넓어졌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그냥 의심 많은 성격이 되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보단 다른 각도로 보게 된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 아닌가 싶다.


물론 혼란 이후에 제대로 정립된다면야 더 좋은 일이겠지만

과연 정립이라는 게 가능할 날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p.s. 리뷰가 산만하고 뭔 소린가 싶으시다면 감기 때문이라 생각해주시길.

      ...이번 감기 독하네요. 열은 없는데 정신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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