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 개정판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약간 변명 비스무리한 걸 해보자면

(그래봤자 읽는 이나 있겠냐만은)

 

그간 책이고, 영화고, 음악이고

일절 보지도 듣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음악의 경우,

대부분 CD로 구입해 마음의 준비까지 마치고

더없이 성실한 태도로 '음악' 만 들었던 예전에 비해

새로 나온 음반이건 아니건 모두 출퇴근길의 BGM으로 격하시켜버린 지 오래요.

 

영화의 경우,

리얼타임...

즉, 아직 영화관에 걸려 있거나 혹은 영화관에서 내려진지 얼마 안 된 작품을 본 것은

'은교' 가 마지막이었다.

 

그 와중에도 책은 그럭저럭 꾸준히 읽고 있었으나

익히 알다시피 이 인간의 독서습관은 기본이 재독이다.

본래 타고난 독서의 속도가 '속독' 임을 알고 있던지라

그럴 필요 없다 라고 스스로 판단해버린 것이 아니거든 반드시 두 번은 읽는다.

그리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가능한 이야기에만 몰입하려고 애쓴다.(분석까진 못 하더라도)

그리고 여기까지가 5월 초에 올린 '우아한 거짓말' 리뷰 이후 

리뷰가 없었던 데 대한 변명이랄 수 있겠다.

즉 한 마디로, 책을 읽긴 읽었으나 재독까지 마친 것이 없어서 못 올렸단 이야기...

 

그렇다면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

'우부메의 여름' 은 재독까지 마친 것인가? 대답은 아니올시다.

근래 구입한 책들 중 드물게 '실패했다' 고 자가판단한 책이요,

실패한 탓에 재독까진 필요없다고 느낀 책이다.

 

'우부메의 여름' 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여름 무렵 일본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에 다량의 책을 구매했던 적이 있다.

그 때 구입했던 책들 중 대부분은 중고서점과 지인에게 넘어갔지만

아직까지도 내 나름의 기준을 통과하여 나의 책장에 남아있는 책이

교코쿠 나츠히코의 '웃는 이에몬' 과 렌조 미키히코의 화장시리즈 였다.

(꽤 까다로운 내 나름의 기준을 통과한 것도 모자라 둘 다 A군에 자리잡기까지 했다)

 

책에 대한 관심은 곧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갔고

렌조 미키히코보다는 교코쿠 나츠히코 쪽이 구할 수 있는 작품 수가 많았던 관계로

다음 구매 작가(?)로 교코쿠 나츠히코가 낙점되었던 듯 싶다.

그리고 백귀야행 시리즈가 워낙 유명했던 터라 그 중에서 고른다고

고른 것이 그나마 단권의 성격이 강한 '우부메의 여름' 이었을 테고.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나 역시도 약한 이야기들이 있다.

(아마 취향이라고 해도 좋을)

 

가문, 핏줄, 모정, 버림받은 아이, 성장하는 아이, 유년

올바르게 자라지 못 한 어른, 외로운 어른, 외로운 사랑

비뚤어진 사랑, 신파가 되버린 사랑. 금기의 사랑...

아마 내가 약한 이야기들을 나열해보자면 이 정도 쯤이 아닐까 싶은데...

 

'웃는 이에몬' 이 사랑 이야기에 대한 나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면

'우부메의 여름' 은 아마도 '가문과 모정' 이야기에 대한 나의 취향을 저격할 거라 믿었더랬다.

그러나 기대는 큰 만큼 사람을 배신하는 법.

그렇다면 나는 왜 '우부메의 여름' 에 실망했는가

 

1. 일단 뭔가 말이 너무 많다.

-이를 부연설명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설명이라고 해야 할지

  이도저도 아니면 작가의 지식 뽐내기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늘한 괴담이 읽고 싶어 집어든 책에서 종교와 과학,

  나중에는 뇌과학에 대한 정보까지 봐야 했던 우매한 독자인 나로서는

  '그 지식들이 반드시 본문에 실려야만 했는가' 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비록 그 정보들이 제아무리 소설의 내용과 관련있다 한들 너무 길잖아. 너무 많고. ㅡㅡ

 

2. 미스터리는 반드시 설명되어져야 한다?

-교코쿠도 시리즈를 전체 다 본 것은 아닌지라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있을까 싶지만서도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신조 아래 몇 마디 지껄여보자면

  '웃는 이에몬' 의 연장선에서 내가 교코쿠 나츠히코에게 기대한 것은 '괴담' 이었다.

  (물론 괴담을 기대했다면 교코쿠도 시리즈가 아닌 다른 것을 사야 했다)

 

  미스터리물을 보면서 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미스터리를 미스터리로 놔두질 못 하고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 설명하려고 하는 부분이다.

  물론 미스터리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이상 미스터리물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할 수도 있겠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귀신이 나타났다 - 귀신을 본 사람의 당시 심리와 죄의식' 으로도 연결지어 갈 수 있는 것을 

  굳이 '귀신이 나타났다 - 그것은 바람과 공기의 습도차가 만들어낸 환영' 으로

  연결지어 설명하려고 하는 부분이다.

  불가해한 부분은 어느 정도는 불가해한 채로 놔두어도 소설의 흐름이 깨지진 않을텐데

  (도리어 신비감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수도 있다)

  굳이 뇌과학과 기억에 대한 뇌의 작용까지 끌어와 결론을 냈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의문이다.

 

3. 에도시대를 유랑하는 셜록홈즈

-이는 애초에 '우부메의 여름' 에 대한 나의 기대가 엇나갔기 때문에 생긴 오해인 듯 싶지만.

  난 진실로 '우부메의 여름' 에

  탐정과 공포물로 연명하는 삼류 소설가 등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 역시 교코쿠도 시리즈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내 탓이긴 하지만...

 

  난 퓨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괴담은 어디까지나 괴담스러워야 하는 사람이고

  셜록홈즈는 베이커가를 뛰어다는 게 맞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꽤 고정관념이 심한 사람이다.

 

  괴담을 기대하고 본 책의 처음부터 삼류 소설가가 나오더니

  삼류 소설가와 고서점 주인의 토론이 이어지고 나중에는 탐정과 경찰까지 등장하니... 

  솔직히 말해....이 책을 무엇으로 봐야 할지

  어떤 분위기에 휩쓸려서 읽어야 할지 헷갈리게 되어버렸다.

 

 

 

쓰다 보니 엄청난 혹평으로 점철해놓은 듯 한데

늘 말하는 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고

더구나 '우부메의 여름'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분위기와 이미지가 있었던 터라

더욱 배신감(?)이 컸던 거라 생각한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내 경우의 이야기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기만 하다가 치고 받고 하는

미스터리를 표방한 추격액션물이 지겨우신 분들에게는

그럭저럭 추천할 만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고풍스런 분위기의 미스터리...정도? 괴담은 아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를 이렇게도 썼다가 저렇게도 썼다가 결국 모두 지워버렸다.

 

예전에야 왕따 시킨 놈이 나쁜 놈. 당한 놈이 착한 놈 이라고 쉽게도 말할 수 있었다만

 

인간관계가 겉보기만큼

그리 쉽게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이후로는

글쎄 쉽사리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주기가 힘들다.

특히 이처럼 '티 안 나는 폭력' 의 경우.

 

그렇다고 하여 천지가 피해자가 아니고 화연이 가해자가 아니란 말은 아니다.

다만 진정 화연이 여타 드라마 등에서처럼 학생들 내 서열 1위의 절대 강자였던 가해자였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되기 싫어 가해자가 되는 걸 선택한 거였는지

적어도 이 소설에서만큼은 그 부분이 부각된 듯 싶다.

단순히 왕따가 등장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

왜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그리고 친구라는 관계 안에서

이런 식의 상하관계가 지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 환경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누가 그렇게 몰아갔는지...

 

천지와 남겨진 가족이 불쌍한 것 만큼이나

화연에게도 동정심이 이는 찰나

 

문득 "그래봐야 뭐가 변하겠어" 하는 생각에

허무해지고 말았다.

 

애건 어른이건, 학교에서건 직장이건

모난 돌은 정 맞고 배척당하기 마련이다.

아마 이는 이 사회가 멸망하기 전까지 마찬가지일 거다.

적어도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그러니 아무리 생각하고 안타까워하고 창작해낸들 뭐가 변하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제일 무서운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세레레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약한 몇 가지의 주제(?)가 있다.

죄와 벌. 가족의 해체. 애증. 그리고 순수한 선과 악.

특히 순수한 악이 종교와 결부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에 약한 편인데

 

알다시피 이 인간.

미스터리나 스릴러로 분류될 법한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이유인즉, 어쩔 수 없이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추격씬이 등장하는 순간

그 간의 문장에서 쌓여왔던 주인공 혹은 범인을 향한 감정적 교감이 정지되어버리고 

그저 '싸우는 내용' 과 '싸우지 않는 내용' 으로 분류해버리고 마는

예의 나쁜 습관이 작용해버리기 때문인데

뭐 이번에도 크게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1권에서 펼쳐지는 각종 정치적 상황에 대한 머리아픔은 이내 졸음으로 연결되었고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이 책을 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꾸역꾸역 1권을 통과하고 나서는 그런대로 내가 익숙해할 법한 

카스단의 내면과 볼로킨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는

한층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곧바로 그들이 적진에 침투하는 바람에

공감(이라고 해도 좋을진 모르겠지만)은 끝나버리고

감상은 다소 갈 길을 잃어버린 듯 하다.

 

이는 이 책의 문제가 아닌

나의 편협한 독서취향 내지는 습관 탓이리라 생각되는데

독서를 '즐겁기 위한 것' 이 아닌 '내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것' 으로 치부해왔던

그 옛날의 어떤 습관들이 남아있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허나 이렇게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아쉽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아이의 이야기가 들어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

 

거대한 악의 세력이 있고, 그 악의 세력에 의해 세뇌된 아이들이 있고

그 악의 세력을 뒤쫓는 그닥 정의롭진 않은 인간들이 있는데

이 '세뇌된 아이' 의 입장에서 펼쳐진 이야기가 한 토막 쯤은 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뭐. 거의 문외한인 장르에 대해 뭣 모르고 하는 말이긴 하지만서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첫 번째 단상.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2. 두 번째 단상. 아니. 삶이 아니라 생활이라 함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3. 두 번 하고도 다시 첫 번째의 단상. 생활이 아닌 일상.

 

4. 문득 이어지는 것은 요즘 자주 들어오는 말.

   "너의 위치는?" "자리는 언제 잡을 거니?"

 

4-1. 이에 이어지는 생각은 도대체 자리를 잡는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월급이 떼이지 않을 직장을 얻어야 자리를 잡는 건지.

       배우자를, 자식을 때리지 않고 아끼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이란 걸 이루어야 자리를 잡는 건지.

       애시당초 모든 시작은 긍정적인 면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거늘

       왜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안정' 을 요구하는지.

 

5. 그에 또 드는 생각은 나는 왜 이다지도 불안정만을 보고 부정만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생활은 이어지고

   그것은 어쩌면 끊임없는 낙하, 쉼없이 되풀이되던 묘씨생과도 비슷할런지도 모르겠다는 것.

 

7. 이다지도 폭력적인 세상에선, 차라리 더 불행해지지 않기만을 원하며

    체념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차라리 더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8. 어찌 되었든 일상은 계속된다.

    주인의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야만적이라기보단, 차라리 가련한 앨리스 씨

 

실패와 패배의 기록이라기보단, 가련할 정도로 길고 긴 애도의 기록

 

문득 살펴보게 되는 것은

나를 둘러싼, 혹은 내 주변의 폭력은 어느 정도에 수치에 도달했으며

그것을 향한 나의 외면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

 

여태껏 본 황정은의 글은 늘 폭력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폭력에 노출된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폭력에 어찌 대항할 줄도 모르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없을 뿐더러

청해봤자 도로아미타불인 사람들.

그래서 그 상태로 그냥 노출되고만 있다가 결국 제 풀에 꺾여 스러져버리는 그런 사람들.

 

그래서인가보다.

씨발스러울만치 욕설이 많이 나오는 문장을 읽으면서도 먹먹해지고 마는 것은

결국 이것은 애도의 기록임을 알기에.

 

앨리스씨는 결국 떨어졌고, 올라오지 못 했고, 난 그래서 슬프다.

허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결국 아무렇지 않은 듯 살 것을 알기에 또 슬프고 먹먹하다.

어쩌면 그래서 다들 폭력에 민감하고 슬픈 건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